한 여름 날의 꿈 자비의 손길은 세상 곳곳에 있음을...
예전에 묘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대한민국 여성 중 노동력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어느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지 통계를 냈는데... 수치가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유흥업 관련 종사자가 무려 40%에 육박한다는 통계였다. 우와.. 40% 10명 중 4명이 유흥업에 종사한다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통계자료라고 여겼으나... 나중에는 더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냐하면, 요새 여대생들은 예전 처럼 분식집 같은데서 서빙을 하지 않고 웬만하면 토킹빠나 스탠딩빠에 알바를 뛰고 있으며, 직장을 다니다가 마땅히 할일이 없으면 역시 빠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니 그 여성분들까지 통계에 집어 넣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니 주부들이 아이들 학원비 마련하려고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니... 어떻게 보면 40%도 적은 수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빠에서 일하는 여대생들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상한 편견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그 중에 하나가 직업에 관련된 것이다. 룸싸롱 아가씨가 시간을 쪼개 대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우와.. 정말 열심히 사네."이러면서 여대생이 시간을 쪼개 룸싸롱을 다닌다고 하면 "에이그 한심한 뇬"이라고 욕을 한다.
그런데 사실 이 룸싸롱 아가씨와 여대생은 같은 여자다. 문장에서 주어를 누구로 삼았는지에 따라 조삼모사가 되는 격이니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원숭이들이란 말인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분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얘기하다 보면 다 똑같은 여자인데, 사고방식이나 생활패턴이 약간 틀리다고 해서 삐딱한 시선을 받는다는거.... 그녀들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 나쁜 일일것이 분명하다.
이런 시선은 같은 여자들이라고 해서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남자"에서 한 여자가 창녀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라. 그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떤 여자라도 재수가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얘기하다보니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영화, <대한민국 헌법1조> 홍보위원이 된 것 같은데...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고대로 부터 시작된 성녀와 창녀의 논쟁이 아니라, 내 젊은날의 기억 속에 소중히 자리잡고 있는 어떤 다방 아가씨에 대한 기억이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그 해는 유난히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해였다. 아무튼 그때 당시 상황이 집안에 손벌릴 형편도 아니고 해서 공사장을 나가게 되었는데...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어디서 걸려도 아주 막 되 먹은 곳으로 걸렸지 뭔가? 바로 아파트 보일러실 공사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파트나 큰 건물의 보일러는 여름에도 정기적으로 돌려 줘야 한다. 그래야 기계가 고장이 안나고 겨울에 좋은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더위에 그 뜨거운 보일러실에 들어갔으니 장면이 상상되지 않는가?
그래도 보일러실 안은 양반이다. 보일러 아궁이 전체를 뜯어내고 새로 공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일러 안에 들어가야만 했었다. 보일러 시동 끈지 하루밖에 안되어서 덥기는 왜 그렇게 덥던지...... 매캐한 먼지와 그 열기, 한 치 앞도 내다 보이지 않는 희뿌연함....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그 짓을 보름 동안 했으니 나도 미친넘이지...
근데 얘기할려는 것은 내 아르바이트 스토리가 아니라 그 아르바이트와 연관된 어떤 여성과의 이야기이다.
공사장에서 일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것 저것 먹는게 많다. 밥은 기본이고 간식으로 빵에 우유, 라면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등등..... 근데 그 공사장에서는 이런 게 없는 거였다. 소규모 공사장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 물정 몰라서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근데 다른 인부들을 보니까 식후에 냉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유리잔에 물방울이 송글 송글 맺힌게 얼마나 시원하게 보이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갈증을 풀어낼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좀 마실려고 물어봤다.
"그거 어디서 난 거요?"
"시켰지"
"어디서?"
"다방에서..."
"근데 왜 나는 안 주는 거요?"
"돈을 안 냈으니까...이거 우리가 돈 내고 따로 시켜 먹는거얌"
헉...나는 어리다고 자기들끼리 시켜 먹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 신분에 다방 커피를 시켜 먹을 수도 없고 그냥 있을 수 밖에...... 그런데 커피가 그냥 저 혼자 날아서 오는가? 항상 누군가의 손에 들리워서 오게 되는 법. 이 이야기의 주인공....레지 아가씨 등장이다.
처음엔 난 신경도 안썼다. 누가 가지고 오건 말건 니들 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면서 그냥 물이나 먹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그 레지 아가씨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아직 어린 여자였다. 내 나이 또래 정도 됐을까? 한 스무살 전후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였다. 얼굴은 그리 이쁜 편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생기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자만 득시글 거리는 곳에서는 할머니라도 이뻐 보이는 법. 나는 어느새 그 아가씨를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처음엔 눈만 마주쳤었는데, 나중엔 그녀도 나의 존재를 알았는지 눈 웃음도 주게 되었다.
다른 날들도 더웠지만 최고로 푹푹 찌는 날이 하루 있었다. 그날은 너무 더워서 보일러실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쓰레기나 부자재 이것 저것 치우는 그런 걸로 소일하고 있었지만 워낙 날이 더워서인지 쪼금만 일을 해도 맥이 풀리곤 했다.
점심을 먹고 그늘을 찾아 기어 들어가 잠깐의 오수를 즐길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모자를 벗어서 바라보니 그 아가씨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 뒤로는 한 낮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그 태양을 가리고 서 있었는지라 오히려 그녀 얼굴은 영화 속 한 장면 처럼 어둡게 처리되어 아지랑이 올라오는 것 같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었다.
"저어~~더우시죠? 이것 좀 드시고 주무세요"
지옥에 빠진 인간이 칼산에서 부처님을 만난 게 이보다 더 기뻤을까?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따라주는 차디 찬 냉커피 잔을 받아 쥘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종종 걸음으로 보자기를 안은 채 그 자리를 떠났고, 나는 바보같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못 한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때의 매미소리는 왜 그리 크게 들리던지....
그 몇 일 후, 그곳의 공사가 끝나, 나를 비롯한 인부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녀도 다시는 보질 못했다. 왜 그 나이에 그런 일을 하는지도, 예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전혀 모른 채...
하지만 그 짧은 만남은 내게 묘한 여운과 의미를 남긴듯 했다. 어떻게 보면 몇푼 안되는 냉커피 한잔이었지만, 내게는 우주 전체가 보내주는 자비의 손길이었으며 그 순간 그녀는 관세음 보살의 화신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유흥업소 종사자 여성들을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녀들을 바라 볼 때 성적인 것과 연관된 이미지가 떠 오르는 건 여전하다. 그건 어쩔 수가 없다. 현실이니까.....
그렇지만 결코 그녀들이 무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나와 똑 같은 사람이구나...아니 어쩌면 더 성숙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안 좋게 살고 있는건 아닌지.... 제발 부탁인데, 어디서든 잘 살았으면 한다.
날이 너무 추워서 여름을 떠 올리다가... 땡볕에 누워 있는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그 아련한 모습이 갑자기 떠오르기에 몇자 끄적거려 봤다. 내 나이, 그리고 그녀 나이 스무살 즈음에 벌어진 '한 여름 날의 꿈'이었다.....
Written By Mulder (2009. 12. 21)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www.occultist.co.kr ) 네이버 명상 카페 오컬트 아쉬람 ( http://cafe.naver.com/occultmul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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