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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들의 탄생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8/0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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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들의 탄생 인디고/ 크리스탈 차일드
몇일 전 스위스에서 존경하는 누님 한분이 오셨다. 캬바레에서 만난건 아니고 어떻게 어떻게 인연이 되서 알게 된 분인데... 이 분의 큰 따님이 책을 냈다고 하길래... 무슨 책이냐고 여쭤봤더니.. 헉..9살부터 쓰기 시작해서 11살때 14권 신화 이야기 전집을 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복사집에서 복사한 책이 아니라 정식으로 완판 도서를 낸 것이다.. 난다 긴다하는 작가들도 1권쓰기가 힘든 마당에...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14권 짜리 전집을 내다니... 그분 말씀으로는 어렸을때부터 그런 재능을 타고난... 자기 자식이지만 지구인과는 종자가 다른 아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신다..
필자가 존경하는 분들의 아드님은 현재 중학생 소년인데... 투시 능력과 천리안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보면 내장 장기가 훤히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었거나 아프면... 의식으로 빛을 보내서 직접 치료까지 가능하다... x맨이 따로 없다... 중학생 소년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총수 댁을 방문해 매주 자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현재 생생히 벌어 지고 있는 일들이다..
필자의 조카 역시 그런 아이들 중의 한명인데... 어렸을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더니... 요새는 아무렇게나 그리는 그림마다 기(氣)를 방사하고 있다.. 기공사분들과 영능력자들에게 확인을 했더니.. 웬만한 승려들이 그린 달마도 뺨칠 정도의 기가 나온다고 한다..
(내 조카긴 하지만 어떨때는 노인과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생긴것도 엄청 영적이다. 나는 저때 뭐하고 있었을까 -_-;;;)
외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인디고(Indigo) 차일드, 크리스탈(Crystal) 차일드라고 부른다.. 외계에서 직접 환생한 영혼들이 대부분이며 태어날때부터 아예 초능력을 간직한 채 태어난다.
이와는 조금 달리 스타시드(star seed)라고 하는 부류들이 있다.. 외계에서 직접 환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지구에 적응한 후 탄생하는 사람들인데... 인디고와 크리스탈 인류를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인디고 아이들 Indigo Children>이라는 책의 저자인 리 캐롤과 잰 토버는 이러한 초인류 아이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창의성이 높고 의지가 강하며, 제3의 눈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 초인류들은 자신들이 지닌 탁월한 인식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해갈 영적 천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속 토굴에서 30년동안 쌔빠지게 수행을 해야 겨우 될까 말까였는데...요새는 아예 깨달은채로 태어나는 것이다. 일부 종교인들과 기득권 계층에게는 위화감의 원인이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이 종종 미친 사람 취급 받으며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급 물살을 탔다.. 석가께서도 후천시대에는 여기저기 깨달은 자가 홍수를 이룰 것이라 했다.. 이제는 하루빨리 이런 시대에 대비하여 초인류를 위한 교육 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초인류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반 사람들도... 내 안에 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얼른 알아 차리고 하루 하루를 신의 의지대로 살아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1세기는 영적인 시대이며.. 우리는 이미 그 안에 발을 푸욱 담그고 있다.. 빠져 나올 수는 없다... 신에게로 곧장 가느냐...돌아서 고생 고생하며 가느냐...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Written By Mulder (2010.7.16)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http://www.occultist.co.kr ) 네이버 명상 동호회 멀더의 오컬트 아쉬람 ( http://cafe.naver.com/occultmul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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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7/1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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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
전지전능하고도 위대한 우주의 창조주는 완벽하십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내게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모두 완벽한 신의 뜻입니다. 내 본질인 창조주 진아는 항상 우리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걱정할 것도..머리 쓸 것도...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십시요.. 여유가 된다면 즐기십시요. 그리고 기뻐하십시요..
사랑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간 밤에 내리친 강렬한 신의 음성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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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배경음과 사랑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7/0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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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배경음과 사랑 내 안의 진아는 사랑이요 그것은 우주를 창조한다
새벽 2시쯤 되었으려나.. 책을 보던 중 어떤 느낌이 있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좌선에 들어갔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어떤 음이 느껴져 오더군요. 분명 귀로 듣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우주의 배경음이라는 생각이 내려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그 우주의 진동음과 멀더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합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머리에 왕관 같은 것이 씌워진듯한 느낌이 오더군요. 그리고 그 왕관 같은 것을 통해서 무언가가 계속 유입되는걸 느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손바닥 안에 있는 듯한 감정이 피어 오르면서 여러가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던 문제와 걱정거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군요.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누가 웃기는 것도 아닌데.. 그저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서 펜을 들었는데 순식간에 저런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다 그려놓고 나니.. 결국 내 가슴에 있는 진아의 진동이 사랑으로 퍼져서 우주가 된 것이며 그 우주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재밌는 체험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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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속의 다이아몬드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6/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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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속의 다이아몬드 아름다운 한 남자의 비상(飛上)
이 프로는 일반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장기자랑을 하는 Britain's Got Talent라는 쇼프로인데.. 이날 참가자는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근무하며 항상 자신감 없이 살아가는 한 남자였습니다. 그의 꿈은 오페라 가수였는데...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여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서만 삭히고 있었죠. 그런데 용기를 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한 평범한 남자의 비상을 지켜보시죠.. 이 출연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에고(ego)의 교육체제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경쟁을 가르칩니다. 획일적으로 무언가를 항상 시킵니다. 대기업 광고는 1등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계속 지껄입니다. TV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누가 누가 잘 하나>라는 프로가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에고 교육 시스템 속에서 자라왔고 우리의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석탄인지 다이아몬드인지 알길이 없는 노릇이죠.. 내 의사대로 무언가를 해 볼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분처럼 우리의 영혼 안에는 신이 준비해 놓으신 다이아몬드가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뿐... 석탄을 닦기 시작하면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다 함께 한 남자의 진아가 드러나는 순간을 지켜보시죠.. 이 영상을 계속 보고 있는 동안 당신은 명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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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소록도 봉사 수녀..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나..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6/14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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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헌신의 삶... 신에 대한 내맡김의 실천으로 이룬 사랑의 보고서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왼쪽)와 마리안 수녀(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뱀다리] 기사를 읽는데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대로 옮겼다. 원래 본 홈피는 외부의 것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 두 수녀님의 삶이 너무나 존경스러워 오마주 개념으로 기사 전문을 띄운다. 이 한편의 기사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
팔만대장경을 모두 본들.. 기독교 바이블을 이잡듯이 뒤진들...이 말보다 더 감동스런 메세지가 있을까...깨달은 자의 공통점은 세가지가 있다. 유머와 겸손 그리고 신에 대한 헌신...이 두 수녀님은 깨달은 자의 겸손과 헌신을 극까지 체득하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는 특유의 살인 유머를 날리셨으리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수녀님들처럼 우주의 창조주에 대한 헌신밖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와 생각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에고의 착각일뿐이다. 또한 우리가 뇌를 이용해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뇌는 그저 라디오 수신기일뿐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메세지를 그냥 받아들이며 그러한 행위를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위대하고도 전지전능한 우주의 창조주 진아에게 모두 맡기고 헌신할뿐...우리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돈과 명예도 연애와 섹스도 그리고 수명과 죽음까지도 모두 정해져 있다. 순간 순간 알아차리며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무조건 신에게 의탁하여 헌신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그렇게 모든것을 맡길때 비로소 바라는대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글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상대계를 벗어나 절대계의 차원에서 무심히 우주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두 수녀님의 삶은 절대계의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기에 눈물을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43년..헌신.. 진정한 신의 도구로써 인생을 영위하신 두분께 모든 에너지를 모아 감사의 사랑을 전한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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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것은 내 좆대가리 뿐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6/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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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난 것은 내 좆대가리 뿐 벼락같은 춘성스님의 육두문자 깨달음
선(禪)의 키워드는 고정관념의 타파이다. 판단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인간의 에고(ego)가 가지고 있는 이원성(二元性)을 깨뜨려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관념 자체를 승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시비를 가리게 되면 옳음을 주장한다하더라도 이미 그 안에 그를 수 있는 씨앗이 깃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과 우주를 무판단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카르마(업장)는 아무런 판단이 없을 때 비로소 녹기 시작하는데 순간 순간 생각이 끼어 들어 이원성으로 시비를 가리게 되면 영원히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선사(禪師)들이 속세에 나와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속인들은 그들의 파격적인 행위를 보고 깜짝 놀라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된다. 터부시 되는 고정관념에 박혀 수십년을 살아왔는지라 속인들의 에고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근세에 가장 파격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양반을 꼽으라면 단연 춘성(春成)스님(1891~1977)이다.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유일한 제자로서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출가해 십여년 동안 만해 스님을 시봉했다. 화엄경을 거꾸로 외우고 다닐 정도로 불교 교리에 해박했던 춘성이지만 ‘교리공부 가지고는 깨우쳤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이 49세에 한국 불교계의 최고 스타 경허 선사의 제자인 만공 스님 밑으로 들어가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를 받아 3년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 로 정진,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대기만성의 표본이다.
이 양반은 평생을 무소유 정신으로 사는 한편 걸쭉한 음담패설의 육두문자를 써서 세인들의 꽉 막힌 고정관념을 날려 버리기로 유명했는데, 전해지는 일화로 이런 것이 있다.
6.25동란 직후 망가진 절을 보수하려고 산에서 나무를 베었는데, 사람들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연행해 갔다고 한다.
파출소에 잡혀온 춘성 스님에게 경찰이 묻기를...
"당신 주소가 뭐요?" 라고 하자
춘성은 "우리 엄마 보지다"라고 대답했다. 경찰이 속으로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해서 또 물었다고 한다.
"그럼 본적은 어디요?" 잠자코 듣고 있던 춘성 왈 "우리 아버지 자지다."
경찰은 춘성을 실성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하는데, 무사히 돌아온 춘성을 보고 사람들이 의아해 여기자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 녀석들이...내 말을 못 말아 들어.."
당연히 알아 들을리가 없다. 이건 단순히 춘성의 육두문자가 아니라 그 양반의 치열한 무소유 정신을 나타내는 촌철살인의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보지에서 태어나고 아버지의 자지에서 연유한 것 빼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 춘성... 사람들이 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냐는 춘성 스님의 답답한 속울음이었던 것이다.
춘성 스님은 이외에도 육두문자 일화가 여러 개 있는데 얘기 나온김에 하나 더 해보자.
언제인가 춘성 스님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어떤 기독교 전도자들이 열차객실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란 피켓을 들고 큰소리로 외치며 지나가다가 마침 머리깎은 춘성 스님이 앉아 있으니 그 부근을 왔다갔다 하며 더욱 큰소리로 외쳐댔다고 한다.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 3일 만에 부활했나니.."
이때 춘성 스님이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뭐~ 누가 죽었다 살아났다고? 이놈들아, 내 평생에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은 내 좆대가리 밖에 못 봤다!!"
이 일갈에 승객들은 폭소를 터트리며 깔깔대고 웃어대니 그 전도자들은 혼비백산 사라졌다고 한다. 보통의 헤아림을 가진 승려로서는 어림없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춘성스님이 잘 쓰시던 ‘보지’ ‘자지’라는 말이 그렇게 상스러운 말이 아니다. 이것 역시 에고의 고정관념일뿐이다. 여지껏 받아왔던 사회의 교육과 터부가 본질을 가린 것 뿐이지 그 단어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이다. 두 단어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아름다운 단어이기까지 하다.
보지의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볻"이 나오는데 '볻'은 뿌리나 씨(種)의 뜻을 가지고 있는 고어로써 아직도 동북아 일대에서 변형되어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이 '볻'은 다시 '볼'로 변하고 여기에 접미사 '옴'이 붙어 '보롬'이 되며 이것은 다시 'ㄹ'이 떨어져 '보옴'이 된다. '보옴'은 지금 우리가 현대어에서 사용하고 있는 '봄(春)'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보지'와 '봄'은 결국 같은 말인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만물의 뿌리가 되고 모든것이 기지개를 펴는 향그러운 봄, 싱그러운 보지.... 터부시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볼' 얘기가 나와서 한마디 덪붙이자면, '볼'의 모음이 바뀌어 '불'로 변했는데, 이 '불'도 우리는 지금 고스란히 쓰고 있다.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불알'이 바로 그것이다.
"돼지 불을 친다" "불두덩 한번 튼실하다"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보지'와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불'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웃나라 일본어에서는 여자의 성기를 "호도(hoto)"라고 하는데, 이 역시 어근 '볻(pot)'이 '보도(photo)'라는 과정을 거쳐 생성된 말이라고 한다.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좆과 자지도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아주 멋드러진 말이다. "좆"과 "자지"의 어근은 "잦"인데 'ㅈ'은 'ㄷ'에서 변한 자음이므로 따라서 "좆"과 "잦"은 "돋"과 "닫"이 조어가 된다. 일본 유구어에서는 남자의 자지를 "다니(tani)라고 하는데, 어근 단(tan)은 닫(tat)이 조어가 된다. 이 닫의 우리나라 원 뜻은 "씨(種)"다. 만주어에 "다림비(tarimbi, 씨를 뿌리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근 "달"이 씨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의 어근 "달"의 조어는 "닫"이다.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씹도 바로 이 ‘씨’에서 나왔다. 사전에서 '씹'을 찾아보면, "성숙한 어른의 보지"라고 되어 있는데, "어른의 보지"로서의 역할은 남자의 정액을 받아 아이를 만드는 초입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즉, 남자의 씨를 받는 입구인 것이다. 씨(種)의 입(口). 결국 "씹"은 "씨"와 "입"의 순수 우리말 복합어 였던 것이다.
두 말을 붙여서 발음 해 보라.... 씨입....씹.... 씨의 입이라.... 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답다 못해 낭만적이지 않은가? 몸의 일부일지언정 의인화 시켜서 생각하는 우리 조상들의 인본적인 자세.... 왜 우리는 이 말을 터부시 해야 된단 말이냐?
명상과 선(禪)이 별게 아니다. 그저 생활 속에서 이런 언어와 생각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사물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것으로 족하다. 살아 있는 서구의 성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말에 의하면 현재 깨달음의 가능성은 과거 천년의 인간 진화에 비해 천배 이상 높은 것으로 그의 운동역학 테스트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예전 선사들처럼 삼사십년씩 토굴에 틀어 박혀 도를 닦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영위해 가면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 토대는 춘성스님과 같은 선구자들이 닦아 놓았으니 제대로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음이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Written By Mulder 멀더의 명상 한자락 (www.occultist.co.kr)에
[참고문헌] 이희승 판 국어 대사전 (민중서림) 우스개 별곡 (서정범, 범조사, 1992) 수수께끼 별곡 (서정범, 범조사, 1987) 이바구 별곡 (서정범, 범조사,1988) 우리말의 상상력 (정호완, 정신세계사, 1991) 어원 이야기 (박갑천, 을유문화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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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왜 병에 걸려 돌아가셨을까?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6/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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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왜 병에 걸려 돌아가셨을까? 깨달은 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
예수, 석가, 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 이 위대한 성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온갖 고초와 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사나이 중 사나이...슈퍼스타 예수..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큰 고통을 안은채 십자가로 직행하셨는지 멜 깁슨 형님이 영화(패션오브 크라이스트)로 여실히 보여주셨다.
생각만해도 미소짓게 만드는 영성계의 큰 형님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 말년에 음식을 잘 못 드셔서 식중독으로 고생 고생 하시다가 입적하셨고,,,
인류 역사상 예수, 석가 이후에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위대한 진아(眞我)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좌측 사진) 향년 71세로 팔뚝에 퍼진 피부암으로 결국 열반에 드셨으며...
20세기 영성계에서 가장 찬란한 지성파 각성자로 추앙받는 크리슈나무르티... 이 양반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현상으로 비춰질게 뻔하다...
완전히 깨달아 신의 영역으로 들어간 현자들이... 왜 '하챦은 고난과 질병'으로 픽픽 쓰러지냔 말이다..
예수와 석가의 신적인 능력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잘 들 아실 것이고... 그저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업장을 녹여 환생을 안하게 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셨던 마하리쉬 선생 그리고 천명이 넘는 청중을 일시에 삼매(三昧; 진아체험)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엄청난 파워의 크리슈나무르티 선생...
대체 이런 무소불위의 초능력을 가지신 양반들이 외부로부터의 고통을 왜 당하며, 암같은 질병에 걸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종종 신을 부정하고 영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좋은 타겟이 되어 안주감이 되곤한다. "이것봐라. 아무리 깨달으면 뭐하냐? 자기 몸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양반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당하면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사랑을 퍼주면서 돌아가셨다는 것에 있다..
사람이 각성을 하고 깨닫게 되면 엄청난 진동수를 가지게 되며 주변의 부정한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막 빨아 들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신경계의 교란(석가)은 물론이고 각종 난치병 증상들(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이 발생하며 힘든 주변상황(예수)이 만들어 진다... 한두명도 아니고 수천 수만의 부정적 에너지가 계속 유입되면 육체적 처리 속도의 한계로 인해 부하가 걸리게 되는 이치이다.. 마하리쉬 선생 같은 경우엔 돌아가시는 직전까지 자신을 친견하러 오는 사람들을 전혀 막지 않으셨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는 친견자들이 너무 많아서 한 사람당 친견 시간이 단 몇초밖에 안될때도 있었다고 하니.. 돌이켜 보면 그분의 사랑이 정말 눈물겹지 않을 수 없다.
도를 닦는 도사들이나 승려들이 속세에서 벗어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힘들게 닦아 놓은 자신의 고급 에너지를 사람들이 빨아가고 대신 그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하는게 싫어서 산으로 숨는 것이다.
예수, 석가, 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성자들이 일반 '도꾼'들과 틀린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양반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부정적 에너지를 계속 흡수해 가면서 세상을 정화시킨 사랑의 화신들이다.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다시 환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한몸 잘 보전하면서 겁나게 수행하여 깨달았다고 느꼈는데... 뭔가가 또 있거든... 하지만 그것이 뭔지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업장으로 인하여 그것을 알기 위해 또 태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은 에고를 벗어나 진아가 되는 것이지만... 궁극의 깨달음은 진아가 우주적 사랑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기에... 위에서 언급한 네분의 선생들은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가셨던 것이다..
마하리쉬 선생의 수제자로서 역시 진아를 깨달으신 스와미 선생이 그의 평전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들은 육체가 튼튼해야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육체가 튼실하지 못하면 진아를 깨달은 후 여러가지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일시에 빈약한 육체로 흡수되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하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영성인들이여...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왔다.. 산으로 숨든가 세상에 나와 사랑을 실천하든가... 하지만 그 선택은 결과에 구애받지 않은 무판단적 선택이어야 한다.. 판단이 들어가면 벌써 에고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카르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것을 선택할지는 이미 당신의 진아가 다 알고 있다.. 그대는 단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될뿐...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 순간 알아차리며 현재를 즐기면 되나니...
[참고문헌] 스와미 평전 <무심, 나는 진아다>, 탐구사, 2000 마하리쉬 평전 <나는 누구인가>, 청하, 2006
멀더의 명상 한자락 (www.occul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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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인생을 음미하는 것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4/1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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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인생을 음미하는 것
*다음의 대화는 필자가 평소에 존경하는 송선생이라는 분과 나눈 것입니다. 듣고 흘려 버릴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깨달음이나 구도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초발심자분들을 위해 정리한 것이니 그냥 심심하실때 편하게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대신..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마시고 달을 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호가 피망(避妄)이신 송선생은 재야 역사 칼럼니스트이시자 현재 모 인터넷 포털 업체 팀장을 맡고 계시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마음 공부를 하신 분인데 이런 분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명상이요 수련인듯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송선생] 요새 걱정이 참 많습니다. 안 좋은일들도 많이 일어나구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한다고 하는데 말이죠.
[멀더] 도력 높은 분들이 예전부터 그러셨쟎습니까 골치아프게 걱정하지 말아라...참 평범한 말인데 우리들은 이해가 안갔죠. 그래도 살아갈려면 머리를 써서 대처도 하고 준비도 해야 사는건데 어떻게 걱정하지 말라는거냐..그런데 이 평범한 말이 진리더군요..
[송선생] 저도 그게 잘 이해가 안갔습니다
[멀더] 세상 모든 일이 완벽하게 정해져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심지어 똥을 누다가 휴지로 세번 닦을지 네번 닦을지 휴지가 마침 떨어졌을지…이런 세세한 것까지도 정해져 있고 밥먹을때 숟가락을 몇번 드는것까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걱정해 봤자 다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다..이런 얘기죠.
[송선생]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들때가 많은데…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란건 존재하지 않는가…입니다. 그동안 절대적결정론을 지지해오다가 아닐수도 있다고 약간 흔들렸거든요.
[멀더] 예를들면 약간 흔들릴거 까지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든게 100% 완벽하게 다 정해져 있습니다..누구랑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을 못하는것도 이혼하는 것도 완전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송선생] 그렇다면 문제는 다 결정되어있다면 영적인 진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멀더] 그것이 바로 신이 숨겨 놓은 핵심 포인트입니다
[송선생] 그러면 다 결정되어 있는 것을 인식했을때..그 인식 과정도 결정론적 세계관의 일부인지
[멀더]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유의지란건 없습니다. 모든게 완벽하게 다 정해져 있는데 그것에 저항하며 머리를 써서 대처할려고 하니 일이 꼬이고 골치가 아픈겁니다. 현대인들의 정신질환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어느 누구든 다시 되물어 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의지를 부리지도 못하는 로보트냐? 예 맞습니다. 육신이라는 틀을 가진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보트입니다. 하지만 로보트랑 틀린 것이 오직 딱 하나가 있습니다..뭐냐하면 어떤 상황을 접하거나 감정을 느꼈을때 그것을 음미하느냐 아니냐...하는 그 자유의지입니다.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오직 그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상황이나 감정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서 순수하게 지켜보는 입장에서 음미를 하게 되면 영적 성숙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지만 음미하지 못하고 머리를 쓰며 괴로워 하면 평생 그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헤메는 것이죠.
[송선생] 그 음미를 하라는 것이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군요
[멀더] 그렇죠.. 저항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송선생] 음미할 능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영적인 진화이군요. 저는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 매트릭스라는것을 인지는 해도 아직 제대로 된 음미는 좀 역부족입니다
[멀더] 그 상황이나 감정은 신이 영적 성숙을 위해 프로그램 시킨 것 들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상황이나 감정에 접했을때 음미만 하면 됩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각인을 하고 음미를 하라는 소리죠. 음미는 참으라는 소리가 아닙니다..예수님도 엄청나게 화를 내고 유태인들을 때렸다는 얘기가 성경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성질냄과는 차원이 틀리죠. 일반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고 그 화냄 속으로 푸욱 들어가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는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음미하는 것이죠. "아..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이렇게 때려 부수고 있구나" 보통 사람들은 성질이 나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누가 화를 내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할만큼 자신의 화 속으로 깊숙히 들어갑니다.
[송선생] 매트릭스라는것을 인지하는(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인간으로서는 굉장히 괴로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이 단지 만들어진 상황이라는것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듭니다. 물론 나와의 관계속에서 상황이겠죠..가족 자체는 존재하는것일 수 있지만요
[멀더] 그 괴로움을 음미해 보십시요. 일반 사람들은 송선생 같은 괴로움조차도 겪질 못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영적 각성이죠
[송선생] 그러고 보니..요즘 제가 힘든게 몇 개 있는데..음미하려고 시도는 해보고 있습니다. 쉽지 않더군요^^
[멀더] 내가 처한 모든 상황 그리고 주변 사람 모두.. 내 주변의 환경...이 모든 것들을 이미 같이 윤회하는 사람들끼리 영혼의 합의를 하고 계약서에 도장찍고 나온겁니다. 즉 신이 우리라는 소리죠. 내 영혼이 그렇게 만들어가지고 나온겁니다.
[송선생] 하...그렇군요
[멀더] 영적 성숙을 위해 다 합의하고 나온겁니다. 하나라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내가 그렇게 정하고 내려 왔을 때에는 내가 견딜만 하니까 도장찍고 나온겁니다
[송선생] 결국 시츄에이션 자체는 절대적으로 결정되어있지만 영적인 진화여부는 결정되어있지 않겠군요
[멀더] 유일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음미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자유뿐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영적인 성숙이 되느냐 아니냐가 나오는 겁니다.
[송선생] 그럼 평생 음미만 하다가 끝나나요?
[멀더] 아닙니다. 이렇게 계속 음미를 평생 해나가는게 아니라 이 음미하는게 몸과 영혼에 체득화가 되면...즉 모든게 내가 만들어 놓은 시츄에이션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게 되면..그때부터 "이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무심공간(無心空間) 속에서 내가 원하는 시츄에이션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조기졸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신선의 삶이죠. 뭐든 할 수 있는...이것이 바로 참된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예쁜 여자를 얻어야지...이런게 희망이 아니라.. 내가 각성을 하게 되면 내 시츄에이션을 새롭게 짤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희망인 것이죠.
[송선생] 아...주옥같은 깨달음 이십니다. 흔히 하는말에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것도...이러한 음미의 과정을 달리 표현한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해진 상황 자체에 대해서는 저항할 필요도 없고,....음미하는 마음만 갖게된다면 괴로운일도 덜 해지겠구요. 결국 상황이라는것도 똑같은 것들인데...마음 상태에따라 달리 보일 뿐인거 같습니다
[멀더] 음미하는게 체득화가 되면 괴롭고 기쁘고의 이분법에서 자연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냥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일뿐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하얀 스크린만 남는데...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면서 울고 짜는 것이죠. 그 하얀 스크린이 바로 내 참자아(진아)이고 스크린 위에 뿌려지는 영상들이 바로 복잡다단한 마음들입니다. 우리는 그 마음이라는 녀석 때문에 그렇게 울고 불고 기쁘고 하는 것이죠.
[송선생] 명쾌하게 정리해주셨네요. 요즘 괴로왔던 마음 상태가 좀 정리되는군요. 물론 이 비밀을 안다는게 다가 아니라..수행이 필요하다는게 더욱 절실해집니다.
[멀더] 지금 이 타임에 제가 메신져로 나타나서 말씀 드린 것도 다 정해진 것일테죠.. 아마도 송선생이 괴로움의 끝자락에 이르러서 좀 더 스폰지 처럼 흡수할려고 저를 이 타임에 불러내는 시나리오를 짜신 것일겁니다
[송선생] 덧없음, 욕망, 아쉬움, 집착등이 구도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 뛰어넘어야 할 것들이군요. 제가 영적으로 조금이나마 진화해서 멀더 거사님이 빨간펜 선생님이 되셔서 오신거 같습니다
[멀더] 구도자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모두가 사실 구도의 삶인데.. 그걸 모르고 있을뿐이죠.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도를 구한다는 말도 그리 적당한 표현은 아닙니다. 참자아가 이미 도인데 그걸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이미 내 안에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저 음식 맛 보듯 음미하면 그것이 구도겠죠
[송선생] 요즘 제게 힘든 일이 연달아 터졌는데..그때 이미 그런것들이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 안했습니다. 다만...그걸 음미하는 능력이 한참 부족했던거 같습니다
[멀더]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한번 영적 각성을 할려면 아주 쎈 자극이 필요하니 당연한 말이겠죠. 불행이 한꺼번에 온다고 공포심을 갖는 것은 괜챦지만 그 공포심에 대해 저항하느냐 마느냐..이것이 일반 사람과 구도자들의 분기점이겠죠. 제가 보기에 송선생은 이미 그 분기점을 한참 넘으셨습니다
[송선생] 요즘 그 생각에 골똘해 있었습니다. 분명히 시츄에이션인데...받아들이기도 음미하기도 힘들다는거 하구요...여기서 이악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숙제는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라고..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멀더] 그래서 옛말에 근기가 없으면 수행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는 것이겠죠
[송선생] 바램이나 희망도 결국 헛된거 같습니다. 헛되다라는 표현은 일반인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긍정적인 자세 마져도 음미라는 고차원적인 수행 앞에서는 감정에 지나지 않은거 같습니다
[멀더] 대단한 통찰이십니다. 사실.. 교육체계부터 바꿔야 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전부 "이 육신은 나"라는 생각의 에고 교육입니다. 육신이 나라고 생각하니까 희망을 가지게 되고 이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희망과 이상은 영원히 도달하지못하는 것들이죠. 왜냐하면 엄밀히 따져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않으니까요 오직 이 현재만 존재하기 때문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니 머리를 쓰고 괴로워하고 그래도 안되니깐 우울증에 걸리고 열등감에 젖고 그런 식으로 일평생 살다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절대 이상을 가지면 안됩니다. 그냥 이 현재를 음미하면 될뿐..우리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맡기면 됩니다. 완전히요. 그러다가 체득화가 되면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입니다.
[송선생] 아...밝아진 느낌이 들면서도...수행의 어려움도 다시 느껴지는군요. 두려움일까요?
[멀더] 그 두려움을 누가 느끼는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요. 과연 누가 느끼는 것일까요
[송선생] 저인가요?
[멀더] 바로 온갖 마음 변화를 만들어내는 송선생의 에고가 느끼는 것입니다. 에고는 과거와 미래에서만 살뿐 현재에는 살지 못하는 놈인데 이제 송선생의 참자아가 현재에만 살려고 결심을 하니...덜컥 두려움이 생긴것이죠. 내가 없어지는구나 큰일났는걸 이거...하면서요. 그럴때 "이 두려움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되물어보세요. 그러면 답은 "나의 에고이다." "그럼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스크린 처럼 하얗게 존재하는 진아이다." 이 패턴으로 계속 질문하고 생각하시면 체득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겁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는 것 자체가 바로 구도이며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요체입니다.
[송선생] 아...그렇군요...그렇게 트레이닝을 계속 시도해보겠습니다.
[멀더]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무슨 마음이 들던간에..그것이 슬픈일이건 기쁜일이건 간에.."이 마음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라고만 질문하시면 됩니다.
[송선생] 스크린과 영상이라고 하면 아주 간단한 개념인데..실제로 에고와 참자아를 구분하는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거겠지요?
[멀더] 구분하는 것이 어렵죠. 에고란 놈이 워낙 교활해서 마치 자신을 참자아라고 생각하고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송선생] 그렇습니다. 참자아로서 음미하려고하면 어느덧 에고가 들어와있습니다.
[멀더] 그래도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에고도 지쳐서 물러가게 됩니다 아직 정신적인 근육이 완전하게 발달되지 않으셔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육체적인 근육이든 정신적인 근육이든 단련하게 되면 강해지게 되니까요.
[송선생] 분명 음미하려는 시도를 하는 나는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나가 참자아인지 에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멀더] 마하리쉬라고 하는...석가나 예수 이후에 가장 깨달음을 크게 얻었다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 제자 중에도 송선생과 똑같은 질문을 던진 제자가 있었는데..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더군요. 에고는 진아와 육체사이에서 매듭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참자아가 <죽은 마음> 즉 에고가 없어진 마음을 이용하여 물어보는 것인데, 이처럼 마음이 에고라는 도구를 쓰고 내려놓아야 비로소 마음이 죽고 각성 상태가 된다. 에고는 잘 쓰면 이처럼 도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하다보면 이 에고는 참나인 진아에 녹아 버리게 되니 걱정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 나는 누구인가만 생각하라...이러셨더군요. 송선생이 진아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심을 가지고 추구해 들어가면, <나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어떤 다른 것이 송선생을 사로잡는데,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했던 그 <나>가 아닙니다. 이미 변화된 나입니다.
[송선생] 그렇다면 에고도 참자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할때 나오는 현상일 뿐이군요
[멀더] 정확한 인식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우리들이 어렸을 때부터 뿌리깊은 에고의 교육체계 안에 살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마사이족으로 태어났다면 에고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사이족은 어딘가에 갇히면 그냥 죽는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미래나 과거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오직 현재만 있기 때문에 갇히게 되면 희망을 품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삶의 마지막이구나...하고 그냥 죽습니다. 원래 사람은 갓 태어나서는 에고가 없습니다. 그게 3살 정도까지 이어지다가 점점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들로 인해 에고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3살 전의 것들을 기억 못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송선생] 아...
[멀더] 지금 우리 교육은 경쟁을 가르칩니다. 경쟁이 바로 에고를 강화하는 놀음이죠
[송선생] 그렇죠. 현재에 충실하기보다는 과거와 미래에 집착해야 살아남을수 있다는것이 에고라는 말이 조금 이해가 갑니다. 경쟁이라는것이 바로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욕망이니까요. 이미 정해진 시스템에서 과거와 미래는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죠
[멀더] 내가 완벽하게 현재만 생각한다면 에고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지금 괴로운것을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왜 괴로운지… 그것이 현재의 일로 괴로운 것인지 둘러 보세요
[멀더] 100% 과거와 미래의 일 때문입니다
[송선생] 아.. 분명...지나간 일때문에 괴롭고 앞으로 올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일때문입니다.
[멀더] 예 맞는 말씀입니다
[송선생] 수행이 부족하니..현재에만 충실하려고 해도..과거와 미래에 대한 감정이 계속 남아있습니다.
[송선생] 두려움은 분명 내가 만드는것이고...이때의 나는 에고군요. 설사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그건 정해진거니까....어쩔수 없는거구요
[멀더] 예 지당한 말씀입니다. 송선생이 과거와 미래의 감정을 계속 갖는건 당연한겁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업식이라고 하죠.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멈추면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처럼 여태 엄청난 속력으로 송선생의 에고 인생을 몰다가 멈추려고 하니 당연히 몸이 쏠리는것이겠죠. 하지만 일단 멈추면 차는 서서히 굴러가다가 결국 멈추게 됩니다. 문제는 과연 누가 용기를 가지고 브레이크를 밟느냐...이것이죠..브레이크를 밟는 행위가 수행이죠
[송선생] 에고에 브레이크를 건다......
[멀더] 아까 말씀드렸듯이 에고는 그냥 진아가 만들어낸 도구일뿐입니다. 도구는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썼으면 놔야죠. 요리사가 요리를 했으면 칼을 놔야 하는 것입니다. 목수가 못을 박았으면 망치를 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퇴근후에도 계속 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길거리를 칼 들고 망치들고 설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강도나 살인자로 오해 받기 딱 알맞죠. 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 에고를 씁니다. 쓰면서도 내가 이 마음을 품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이며 다 썼으면 놔야 합니다. 계속 그 도구를 들고 있으면 무겁기만 하고 인생 자체가 복잡다단해 지게 됩니다.
[송선생] 그 마음을 쉽게 놓을려면 정신적 근육을 발달 시켜야 겠군요.
[멀더] 아까 정신적 근육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옛 고승을 보면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걸 보고 대오각성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 있쟎습니까? 그걸 보고 “나는 왜 그런 깨달음이 일어나지 않지?”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는데…그건 당연한겁니다. 일반인들은 나뭇잎 떨어지는걸 아무리 봐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승의 정신적 근육과 일반인들의 정신적 근육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보디빌더와 어린애를 비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애에게 쇠로된 아령을 하나 줘보십시오. 아마 끙끙댈것입니다. 일반인들의 정신적 근육은 어린애와 같아서 나뭇잎 하나가 쇠로 된 아령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각성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 고승은 그동안 부단히 정신적 근육을 단련시켰기에 어느날 문득 우주가 보내준 아령 같은 메시지를 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송선생] 어떻게 하면 그 정신적 근육을 발달 시킬 수 있을까요?
[멀더] 이미 다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상황, 인연, 감정…이 세상 전부가 완전히 확정되어 있다는 걸 알고 그 확정된 것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 음미하는 것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확정된 세계속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자유의지요 수행이요 정신적 근육을 단련시키는 요체입니다. 그것이 완전히 체득화되어 모든 의심이 사라질때 에고도 사라지며 그때부터 기존의 상황을 벗어나 원하는 인생 시츄에이션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운명론도 아니요 결정론도 아닙니다. 보다 적극적인 운명 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선생] 창조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시죠. 알듯 말듯 합니다.
[멀더] "무판단은 카르마를 초월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것들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판단이란 것은 에고가 없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그냥 순수하게 지켜보고 음미하는 상태가 무판단이죠. 그런 상태에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이 곧바로 창조로 이어집니다. 카르마로 만들어진 주변 상황들이 녹아 없어지게 되는 것이죠. 새로운 인생판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놀이의 시작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삶 자체가 우주에 펼쳐진 한바탕 놀이이긴 하지만 진정한 놀이는 에고가 없어진 이후부터입니다. 항상 생각하십시요. "이 상황과 감정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거기에 모든 답이 들어 있습니다.
[송선생] 오늘 많은걸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얘기나누시면서 좋은 말씀 들려 주십시오.
[멀더] 가르치고 배우고가 어디있겠습니까?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서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얘기죠. 저야말로 오늘 큰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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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현상을 보는 우리의 자세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3/1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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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현상을 보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상과 만나게 된다. 지하철을 탈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역전앞을 지나갈 때… 수많은 노숙자와 시각장애자, 그리고 장애를 가지신 분들의 구걸…
(드라마 속 손현주 님의 모습인데 너무 리얼해서리.. ^^;)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 보자.. 여러분들은 그런 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이곳은 청문회장도 아니고 재판장은 더더욱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라는게 아니라 그냥 여러분들의 솔직한 심정을 스스로에게 속삭여 보라는 얘기다.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얼굴을 찌푸리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연민을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저렇게 살아서 뭐하냐.. 나같으면 그냥 자살이다.. 등등 생각하시는 바가 다 틀리실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의 공통점은 바로 불편함이다…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불편함… 바라본다 해도 뭐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그 양반들을 바라보는 현상의 진실이다..
하지만 과연 여기까지일까?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 땡일까? 평생 그런 양반들을 보지 않는 조건이라면 모를까…여러분이 죽을때까지 그런 현상을 지켜봐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비단 길거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TV의 의학 프로그램에서는 매주 희귀병, 불치병 어린이들이 고통의 단말마를 내지르며 괴로워 하고 있고, 하다못해 아침 출근길에 거리에 방치된 쥐, 강아지, 비둘기 등의 동물 시체만 봐도 혀를 쯧쯧 차며 불편해 한다.
돈 몇푼 쥐어주고, 기부금 얼마 내고, 골목 한 귀퉁이로 동물의 사체를 밀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근원적인 불편함은 어쩔것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이 모든 현상들이 다양한 사건들이라 생각하지만…결국은 하나로 귀착된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내가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사람이 저꼴로 살면 안되는데.. 하는 내면의 두려움…바로 그것이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다시 되물어 온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맹자의 측은지심은 엿바꿔먹고 긍휼하게 여기라는 예수의 말은 니미 좆이란 말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그분들의 말씀은 모두 옳은 말씀이시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잘 못 받아 들여진 것이 문제일뿐이다.
측은지심을 갖되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며, 긍휼하게 여기되 저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기존의 종교와 윤리는 이러한 두려움과 저항에 대한 문제는 쏙 빼놓은채 앞에 있는 도덕 교과서적 명제만 파고들었으니 여러분들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확실하게 얘기하건데, 여러분들이 걸인이나 장애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려움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그 두려움은 여러분을 덮치게 되어 있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저항하면 반드시 나를 엄습하는 것이 이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드릴 테니 그대로만 행하시면 된다..
걸인이나 장애우, 희귀병, 불치병, 그 밖에 우리가 불편해하는 시선을 보내는 모든 분들은 우리들보다 엄청나게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용감한 분들이다. 이미 이 지구에 육신을 받아 내려오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해 결정을 끝내고 내려온 위대한 전사들이다. 오히려 그 양반들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야지 감히 우리들이 그 양반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일뿐이다.
불편한 시선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남다른 체험이다. 바로 그 남다른 체험이,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한, 또는 몇생에 걸쳐서 거듭 경험해야 얻을 수 있는 영혼의 성숙을 순식간에 이뤄낼 수 있는 영적 성숙의 엘리베이터인 것이다.
우리는 그 양반들을 찬양해야 한다. 돈을 건네지 않아도. 기부금을 내지 않아도 가슴 속으로 “용감한 영혼이여. 승승장구하소서. 이 생에서 체험할 건 모두 하고 가소서.”라고 기원만 하면 된다. 그것이 마지못해 불편해 하며 돈 몇푼 쥐어주는 것보다 훨씬 고결하고 숭고하고 여러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금전을 건네더라도 지금처럼 쭈뼛쭈뼛 거리며 내지 않아도 된다. 용감한 영혼을 위한 후원금이라 생각하라. “내가 가진게 없어서 딴건 당신과 같이 하지 못하고 후원금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라. 그러면 당신 가슴 속에 있던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불편함도 사라질 것이다.
기존의 종교와 사회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점을 대중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거늘…여지껏 대중들을 어린애 취급하며 공포심만 잔뜩 앵겨주고 있었으니 한탄스러울 일이다.
종교인이건 일반인이건 이제는 <불편한 현상을 보는 우리의 자세>에 변화를 주어야 할 시기가 됐다. 두려움을 갖지 마시라. 불편해 할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나니…당신은 이미 하느님이요 완전무결한 신이다.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말라. 이미 완전한데 뭘 더 깨닫는다는 소린가? 뭔가 깨달아야 한다는 그 관념 자체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류 전체가 속박당한 구속임을 가슴으로 이해하시라. 그리하면 더 이상 당신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을 것이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시는가? 원래 진리는 간단한 법이다. 여러분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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