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일본과 중국의 초거대 피라미드
X파일 분석 보고서 1 |
2006/10/14 17:33
|
|
|
|
■일본에도 피라미드가?
1934년 6월, 초로의 한 학자가 안내인을 동반한채 히로시마의 아시다케산(葦嶽山)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오래라 주변은 모두 진흙 투성이였고, 계곡을 몇 개나 넘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들은 얼마 후 높이 8미터, 폭 10미터 정도의 돌을 발견했고 곧이어 번쩍이는 번개 속에서 노학자는 무언가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저기 보이는 산이 바로 피라미드야"
소리를 친 사람은 사카이 가쓰도키(酒井勝軍)박사. 그가 발견한 산은 바로 아시다케산이었으며, 일본 최초의 피라미드 추정물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최초로 피라미드를 발견한 사카이 가쓰도키 박사) 산이 피라미드라니?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지만 엄연히 일본에서 국가적 이슈로 떠 올랐던 실제의 기록이다. 원래는 피라미드였는데 거기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흙이 덮히고 나무가 자라 산의 모습이 됐다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피라미드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 박사의 연구결과였다.
■하늘배를 타고 이집트로 날아가
일본의 피라미드는 다케우치(竹內)문서와의 연관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쇼와 10년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문서가 이바라키현의 한 신궁(皇祖皇太神宮)에서 발견된다. 다케우치 고마로(竹內巨磨)가 보관하고 있던 이 고문서는 일본의 초고대 문명에 관한 놀라운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써, 일본인은 우주에서 도래한 신인(神人)이며, 엄청난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이집트까지 오갔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카이 교수는 바로 이 점을 주목했다. 다케우치 문서에는 직접적으로 피라미드를 언급한 내용은 없지만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와의 연계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일본의 천관산) 실제로 그는 이집트로 건너가 고대 팔레스타인과 유태인의 역사를 조사하는 동시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역사책에서 특이한 문건을 접하게 된다. 거기에는, "고귀한 인종이 동방의 해가 뜨는 나라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나타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고대의 일본인이 멀리 이집트까지 갈만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다케우치 문서와도 일맥상통하는 한편 자신이 발견한 일본의 피라미드와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카이 박사의 많은 연구물들은 2차대전때 소실되거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본 정부에 의해 몰수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후학들이 밝혀낸 그의 연구결과 중에서 가장 주목 받는 것은 피라미드山 주변에는 반드시 죠몽(繩文) 유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연관 관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할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피라미드에 대한 의문점
일본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와 다른 점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지라 자연적인 피라미드 모양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거석을 잘라서 만들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피라미드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고인돌이나 영국의 스톤헨지 비슷한 거석 건조물들을 이용해 피라미드 파워를 증폭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일본 피라미드山 근처에서 발견되는 석조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피라미드를 필요로 했을까? 사카이 박사는 여기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식물의 성장 촉진과 관계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파워를 이용해 주변환경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사진: 일본에 분포되어 있는 피라미드 추정 지도)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을 그냥 인정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그 주장이 너무 국수주의적이라는 것과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은 비단 일본과 이집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방형 피라미드는 남미의 아즈텍은 물론 우리나라의 고구려 장군총, 그리고 그 실체가 정확히 파악 안된 티벳과 중국 그리고 만주지역에 널리 걸쳐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정확한 용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피라미드
남미에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됐지만 동북아 일대에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은 극히 최근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우리가 피라미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고구려 시대의 무덤도 그렇지만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Hausdorf)가 중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서방 세계에 전했다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들,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학자들이 티벳 지방에서 발견했다는 1,800m 짜리 초 거대 피라미드의 실체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 피라미드 앞에서 태연히 밭을 갈고 있는 중국의 농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피라미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피라미드가 있는 지역을 외국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안 지방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는 평균 25 ~ 100 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과 맞먹는 300 m의 높이를 가진 것도 있다. 그 정도면 이집트의 쿠푸왕이 만든 기자의 대 피라미드보다 거의 2.5 배 정도 높고, 면적 또한 여의도보다 큰 엄청난 건축물이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까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1963년에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이 피라미드를 진시황의 무덤으로 생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에 실시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 수 천년 앞서 만든 것임이 밝혀지게 되어 서둘러 작업이 종결되었다.
[사진: 독일인 학자 Hausdorf씨의 TV인터뷰 사진과 직접 찍은 중국의 피라미드]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는데,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하며 중국에 의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서구세계의 학자들과 방송국의 요청에 못 이긴 듯 '발굴기술과 유물 보존기술이 부족해 다음 세대로 그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는 말을 언론에 보도했으며, 이와 같은 중국 측의 태도는 고구려 역사 왜곡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씨는 자신이 찍은 이 피라미드 사진들을 용케도 빼내는데 성공하여, 1994년 "하얀 피라미드"란 책을 출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티벳의 피라미드
2000년 6월에는 러시아의 학자들이 서장 티벳 고원에 피라미드가 존재한다고 발표했는데, 티벳 지방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은 그 즉시 반박문을 내어,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피라미드와 고대 건축물을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어떤 목적과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세웠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그것은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계단형 산일 뿐이지 결코 피라미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그 산들은 해발 6714m의 위용을 자랑하는 캉린보체山의 여러 봉우리인데, 러시아의 과학자 몰다스프씨를 중심으로한 일련의 학자들이 그 봉우리들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였으며, 총 100여개의 피라미드 추정 봉우리와 고대유적을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그중 가장 큰 피라미드는 높이가 무려 1,800m나 되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는데, 이 소식이 곧바로 중국의 '참고소식(2000.06.09일자)'이라는 주간지에 실리게 되어 중국과 러시아의 피라미드 공방에 불을 지피게 된 것이다.
러시아측은 컴퓨터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구조와 산의 구조를 대조 분석한 결과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피라미드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으며, 티벳 피라미드는 멕시코와 이집트의 일부 피라미드처럼 계단식 구조로서, 주위의 산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산을 피라미드로 착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유럽 보스니아에서도 발굴중
지난 2006년 4월 20일 미국 NBC에서는 유럽에서도 드디어 피라미드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했다. 보스니아의 고고학자와 발굴단이 비소코(visoko)의 중앙 보스니아 타운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전하며 15년간 라틴아메리카의 피라미드를 연구해 온 보스니아 고고학자 세미르 오스마닉(Semir Osmanagic)이 현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스니아 피라미드 발굴현장)
오스마닉 박사는 비스코 타운위로 솟아오른 2,120피트높이의 언덕이 실제로는 1층 피라미드로서 유럽대륙에서 발견된 첫번째 피라미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라미드의 추정 크기는 722피트(220미터) 높이이고 Giza의 이집트 대형피라미드군으로 치면 3번째 크기라고 한다. 이 피라미드는 처음에 거대한 돌로된 블럭들이 정방형 모양으로 깍여지거나 훼손된채 발견되었는데 언덕의 경사도는 45도경사를 지며 정상의 평면을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위성사진과 온도감지 이미지들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그 주위에서 좀더 작은 다른 2개의 피라미드도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발견은 유럽에서 앞으로 발견될 다른 피라미드들의 전초전일지도 모를일이다.
■갈길이 먼 피라미드 연구
[사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의 룽산(龍山)에 있는 고구려의 장군총. 형태가 완벽한 장방형으로서 피라미드의 조건에 꼭 부합하고 있다. 마치 이집트나 남미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보는 듯 하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현지 중국 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전혀 별개의 피라미드에 대해 살펴봤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산들이 정말 피라미드인지, 우리의 장군총이 아즈텍의 피라미드와 같은 종류인지도 확실치 않다. 중국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티벳의 피라미드는 학자들간의 이견 공방 속에 오히려 그 진실이 묻혀 버린 느낌마져 든다. 아프리카 수단의 사막에 있는 쿠시왕국의 '메로에(merowe)' 피라미드에 이르러서는 거의 두 손들 지경이다. 피라미드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사진: 쿠시왕국의 수도 merowe에 전해져 오는 정체불명의 피라미드. 아직 이렇다할 전문적인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막의 모래바람속에 버려져 있다. 쿠시왕국은 기원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던 전설 속의 신비한 흑인왕국으로서 일명 이디오피아 왕국이라고도 전해진다]
어떤 현상이나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 것은 오히려 쉬운일일지도 모른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진실성을 규명하고 밝히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 오컬트라는 학문의 목표요 사명이다. 피라미드에 얽힌 이러한 미스테리들도 말없이 뒤에서 수고하는 젊고 패기있는 오컬티스트들에 의해 곧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것이 세월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세월은 피라미드를 두려워 한다. -고대 이집트 경구-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i33man@naver.com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고대유적, 모리노 다쿠미, 들녘, 2001 초고대 문명, 맹성렬, 넥서스, 1997 충격의 고대문명, 찰스 셀리어, 한뜻, 1997 잃어버린 과거의 여행, NHK취재반, 우주문명사, 1984 돌에 새겨진 인간의 정념, NHK취재반, 노벨문화사, 1983 초고대 여행, 박우인, 예예원, 1994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태영-김유경, 학고재, 2000 티베트 고원 피라미드 존재 공방, 지해범 특파원, 주간조선 2000.07.27 (1613호) http://www.china.org.cn/english/15802.htm http://ikuno.lolipop.jp/piramido/
|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www.occultist.co.kr/tt/occult/trackback/23 |
|
|
|
|
|
오파츠...공룡시대의 인간 발자국
X파일 분석 보고서 1 |
2006/10/12 03:00
|
|
|
|
오파츠...공룡시대의 인간 발자국 풀리지 않는 고대 유물의 수수께끼
■시대에 맞지 않는 이방인?
여러분들은 '오파츠'를 아시는가? 아마 대부분은 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오파츠(OOPATTS)란 Out of Place Artifacts의 약자로서, 그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인공적인 가공 출토물을 뜻하는 오컬트 학계의 전문용어다.
이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아이반 샌더슨(Ivan Sanderson; 1911~1973)으로서 그의 1967년도 저서인 "초청받지 않은 방문자-한 생물학자가 본 UFO"에서 공식 언급이 되었다. 후에 '노아의 방주'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레니 노바겐' 등에 의해 인간이 살지 않았던 또는 원시문명이었을 때의 지층이나 물건에서 발견된 인공구조물의 총칭으로 널리 쓰이게 된다. 아직 이해가 안되는 분들을 위해 더 부언 설명을 하자면, 공룡시대 때의 지층에서 밥그릇이 나오거나, 선사시대 때 현재의 기술로도 만들 수 없는 물건이 출토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진귀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오파츠들은 그 생성 시기에 따라 제1종 오파츠와 제2종 오파츠로 구분짓는데, 제1종은 약 10만년 전 이상의 것을 지칭하고, 제2종은 10만년 이하에서 몇 천년 전까지의 것을 말한다.
■설명할 수 없는 출토물
중국에서는 매우 순도 높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허리띠 장식물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그것이 거의 2천년 이상 된 것이라 발표했으며, 19세기에 와서야 개발된 전기 도금이 4천년전 이집트와 이라크의 장식품에 쓰여졌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삼엽충을 밟은 인간 발자국 화석)
오파츠 중 의외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발자국 화석이다. 1959년 고비 사막에서의 발자국 화석 발견을 필두로 1968년에는 삼엽충을 밟아 찌그러뜨린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어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며, 그 뒤에도 영국의 원더미아 호수와 미국의 네바다주 광산에서도 잇달아 발견이 되었다. 특히 68년도 발견은 캄브리아 시대부터 생존해온 대표적인 고생물 삼엽충과 같이 출토되었기에 오파츠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공룡과 같이 발견된 것도 있다. 텍사스의 파럭시 강의 강바닥에서 디노사우르스 공룡의 발자국과 함께 찍힌 인간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발자국이 발견될 때부터 큰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3개의 발가락이 있는 디노사우루스 공룡의 발자국과 인간의 발자국이 한곳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지질학자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그렇다면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묻어두고 무시할 것인가?
늘 말했듯이 이건 과학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다. 내가 해결 못하면 후세 사람들이라도 해결 할 수 있게 그 기틀이라도 세우려고 노력하며 자료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요 과학적인 사고 방식이란 소리다.
■사라지는 오파츠들
이런 오파츠와 관련하여 최근 흥미있으면서도 가슴 아픈 기사가 외신을 타고 날아 들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 세계 언론은, 그 나라의 유물까지 파괴하는 미국의 무식함을 질타하면서, 매우 우려스러운 소식 하나를 전한 적이 있는데, BC2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터리 전지가 공습으로 소실될 우려가 있다는 뉴스였다. (문화일보 2003-02-28, 고대 인류최초 배터리 사라지나, 윤성혜기자)
(사진설명: 이라크 항아리 전지 내부도와 실제 모습)
그 전지는 오파츠 분류상 제2종 오파츠로서, 18세기의 '갈바니'나 '볼타'가 만든 전지와 구조가 완전히 똑같은 항아리 전지인데, 1937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남서쪽 교외 언덕에서 약 2000년전의 고대 바르티아 유적으로부터 점토로 만들어진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당시 발굴책임자였던 독일 학자 빌헤름 퀘니히 박사는 함께 발굴된 동으로 된 원통과 철봉 등을 관찰한 결과, 이것은 전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항아리 안에는 구리로 만든 실린더와 철사가 들어 있었고, 그 입구는 역청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산성 물질의 한 종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퀘니히 박사는 그것을 전기라고 생각하여 산성 용액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 1.5~2V의 전류를 띄고 있다는 것을 밝혀 냈다.
발견된 후에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정말 놀라운 발견이다. 이렇게 귀한 인류의 보물이 이기심에 가득찬 석유 전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으니 세계 각국의 문화계 인사와 의식있는 사람들로서는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진설명: 직접 전압 측정 실험을 하고 있는 일본 TV 화면)
그 뒤로 이 전지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접할 수 없었으며, 추측컨데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약탈되었을 때 사라졌거나 파괴되었을 공산이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더 문제되는 것은, 오파츠의 중요성을 모르는 인류의 무지에 있다. 오파츠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가 더 심해진다면 제2, 제3의 바그다드 전지 같은 또 다른 희생양이 속출할 것이며, 우리 인류는 선조들이 남겨놓은 비밀 창고의 열쇠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후세에게 있어 우리의 행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씻을 수 없는 범죄 행위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것. 바로 이 점을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한다.
■돌속에서 발견되는 물건들
요즘에야 학생 데모가 이슈도 안될 만큼 그 정체성이 퇴색되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초반에 대학 생활을 하신 분들은, 가장 혹독한 학생 데모 시기를 거친 연배로서, 적극적으로 직접 참가한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선배에게 끌려 한 두번 나서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때 갓 입학한 신입생이나 여학생들은 주로 후방에서 벽돌 깨는 작업을 담당하곤 했는데, 간혹 보면 벽돌 속에서 찌그러진 못이나 병뚜껑이 나온곤 했었다. 그런데 벽돌 속에서 못이 나왔다는 것은 그 벽돌을 제작할 당시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됐건간에 시멘트에 섞여 들어 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벽돌이 딱딱하게 완성되고 나서는 집어 넣을래야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얘기하려는 제1종 오파츠들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사진: 여전히 각종 시위에선 돌이 빠지지 않는가보다. 외계인들이 이 모습을 보면 지구는 여전히 석기시대라고 할지도...)
빛의 반사에 따른 편광(偏光)에 관한 <브루스타의 법칙>으로 유명한 영국의 물리학자 데이빗 브루스타(1781~1868)는 1844년 영국 학술 협회에서 학술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스코틀랜드의 킹데이 채석장에서 잘라 낸 돌 안에서 쇠못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후에 다시 조사한 결과 이 오파츠는 약 6천만년전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마치 시위 때 부서진 벽돌안에서 못이 나오듯 이것 역시 돌 안에 들어 있었으며, 돌속에 박혀 공기와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산화되지 않고 여지껏 보존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돌 속에서 나온 오파츠들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19세기 런던 타임즈에는 돌 속에서 발견된 금실(金室)과 석영 속에서 나온 쇠못에 대한 기사가 자세히 실려 있으며,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 영국의 '고물(古物)연구가 협회보'에도 각각 바위속에서 나온 금속 용기와 석탄층에서 나온 쇠도구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물건들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으며 기록 또한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그 진위가 불분명하지 않기에 오파츠를 논하는데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로 거론될 뿐 연구 대상에서는 부득이하게 제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모든 오파츠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사진술의 발달과 보존술의 향상으로 상당수의 오파츠들이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음에 소개하는 제트기 모양의 황금 세공물이다.
■고대인...하늘을 날다?
(사진: 비행선으로 추정되는 고대인의 황금 세공품)
남미 콜롬비아에 있는 기원전500-800년경 시누문명의 유적으로부터, 길이 약 6㎝, 폭 약 5㎝, 높이 약 1.5㎝의 새와 같은 모양을 한 황금 비행선이 여러개 발견되었다. 동물학자인 '아이반 샌더슨' 박사는 이 황금 세공물에서 기계적인 속성을 처음 언급하였는데, 이 기이한 물건은 한눈에 봐도 날개라 생각되는 삼각 주날개와 수평 꼬리날개, 수직 꼬리날개가 있고, 풍향계, 조종석, 엔진의 공기흡입구까지 보이고 있다. 왜 이런 금속 가공물을 동물학자가 감놔라 배놔라 했냐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부언 설명을 드리자면, 이 황금 세공물은 콜럼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황금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것으로서, 황금 기념물로 치면 세계 제1의 박물관이지만 연구가 미진한 관계로 각 진열품에 설명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황금 세공물 역시 간단하게 "동물 형태물"이라고만 되어 있을뿐 아무런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기에, 동물학자인 샌더슨 박사가 연구를 하게 됐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로켓 비행사로 유명한 '잭.A.울리치'는 이 황금 셔틀을 처음 본 순간 "비행사의 직감으로 이것은 그냥 비행기가 아니라 초음속기를 연상케 하며, 그것도 전투기 종류일 것"이라 지적했다.
그 후 뉴욕 항공연구소 '아서 포이슬리'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더 조사를 한 후 "이 모형은 항공역학의 이론대로 만들어진, 델타 날개의 제트 전투기이거나, 미국의 콜럼비아호 같은 로켓식 스페이스 셔틀의 모형이다"라고 발표를 했다.
인류가 동력식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건 초등학생도 다 아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1903년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그보다 수천수만년전에 만들어진 이 황금 비행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옛날에도 인류는 비행기로 하늘을 날았다는 이야기인가?
하늘을 나는 물건은 이것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1898년 이집트의 '사카라' 교외의 분묘에서 새를 닮은 목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당시 '새'로 분류되어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약 8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1969년 '칼리르 메시하'라는 학자에 의해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새를 본딴 단순 모형이 아니라 무화과 나무로 만들어진 글라이더였다는 것이 비행 실험결과 밝혀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다음에 소개하는 이 사진이다.
(사진: 아비도스 신전 내부의 벽화)
나일강 서안에 있는 고대 이집트 유적인 아비도스(Abydos)의 신전에서 발견된 이 벽화들은 역사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아도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일별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의 운송수단과 꼭 닮아 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정말 그들은 하늘을 날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진: 신전에 새겨진 각 운송수단과 현대의 비슷한 기종 비교)
몇천년 전에 이미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몇억년 전 공룡들이 사람하고 나란히 산책했다는 지금까지의 얘기만으로도 글쓰는 필자나 보시는 독자분들이나 안 그래도 해골이 복잡한데, 여기 색다른 해골 사진 하나 보여 드리도록하겠다.
(사진: 1935년 벨리즈의 마야유적지에서 발견된 수정해골)
■고대인들의 놀라운 세공 기술
이깟 수정으로 만든 해골이 뭐가 대단해서 소개하냐고 하겠지만, 수정의 경도는 모스 경도로 7도다. 다이아몬드가 10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보통의 칼로는 표면에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대단한 경도가 아닐 수 없다. 즉, 요새의 첨단 기술로도 수정을 이렇게 완벽하게 해골 모양으로 깎을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런 해골들이 현재 발견된 것만 30여개 정도나 되며, 그 기원은 최소한 마야 문명 이전이니 고고학자나 과학자들로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제2종 오파츠 되겠다.
1927년 미첼 헤지스 박사에 의해 마야 고대도시 루바안탄 유적에서 첫 발굴 된 후 지금까지 몇몇 해골들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 수정 해골들은 단 한 개의 수정으로 만들어졌으며 더 기가막힌 사실은 수정의 결, 즉 자연으로 생성된 축을 무시하고 가공됐다는 것이다. 현대의 기술로도 자연축을 무시하고 수정을 가공하면 균열이 생기거나 쪼개지기 마련인데, 마야 문명 또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미지의 인간들은 그들만의 숨겨진 기술로 이 수정해골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놀라운 '깎기' 기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30년 중미 코스타리카의 디키스 지방에서 벌채중이던 미국의 과일회사 인부들은 바나나농장을 개간하러 갔다가 놀라운 물건들과 조우하게 된다. 100여개가 훨씬 넘는, 돌로 깎은 원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사진: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된 거대한 석구 중 하나. 재질은 대부분 화강암으로서 완전 진구(眞救)에 가깝다)
석구들은 크기도 각양각색으로 작은 것은 테니스 공만한 것에서부터 큰 것은 약 2.4m에 무게만도 20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것도 있었다. 1940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박물관 연구팀이 직접 가서 조사를 했는데, 이 석구들은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완전 진구(眞救)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배치 또한 어떤 것인지 모를 기하학적인 표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석구들의 소재인 화강암은 그 근처에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고, 화강암 산지가 가까워 봤자 거기에서 약 50km정도 떨어진 디카스 강 하구에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강가에서 돌을 운반한다쳐도, 크레인으로 트럭에 싣는 것도 불가능할 뿐 더러 그 먼 거리의 밀림을 헤치고 가져온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대체 이 원구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미개한' 우리 현대인들은 무엇하나 알아내지 못한 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신기한 원구를 그저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직 넋을 놓지 마시라. 더 입 벌어지는 오파츠가 기다리고 있으니, 밑에 있는 지도 한 장이 바로 그것이다.
■수수께끼의 고대 지도
한 시대와 문명의 발달을 알아보는 척도 중 하나는 지도 제작술이다. 지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타 주변 과학이 어느 정도 발달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종합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측량술, 항공술, 교통의 발달, 운송수단의 첨단화 등이 총체적으로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예술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원래 지도의 기원을 알 수 없는 필리 레이스 지도)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9년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의 궁전에서 양피지에 그려져 있는 지도 두 장이 발견되었다. 1513년 작성이라고 기록된 한 장에는 스페인, 서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의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1528년 제작된 것으로서 그린랜드, 캐나다 일부, 북아메리카 동해안이 그려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16세기 터키 해군의 제독인 필리 레이스(레이스는 선장이라는 뜻)였다. 이 지도는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경위도선도 없고 몇 개의 작은 원형과 거기에 방사선이 무수하게 그어져 있을 뿐 육지 그 자체의 모양이 비뚤어진 곳들이 많아서 지도로서의 기능을 과연 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정확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이 고지도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었다. 미국의 고지도 학자 '앨링턴 맬러리'는 터키 국립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잠자고 있던 이 희한한 지도를 꺼내어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지형이 비뚤어져 있는 바로 그 이유는 놀랍게도 '정거방위도법'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정거방위도법'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공군에 의해 개발된 군용 항공 지도 제작법으로서, 이 작도법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는 지구의 둥근 구면 위를 날아가는 항공기에서 알아보기 쉽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었다. 즉 지형이 공중에서 볼때처럼 눈에 비친 그대로 비뚤어지게 그려 넣은 지도인 것이다.
해안선의 조그마한 돌출부, 강입구, 섬, 내륙의 고원, 산맥 등의 소재나 지형을 옛날 사람들이 실제 그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18세기 '오일러 방정식'으로 유명한 오일러에 의해 완성된 '구면삼각법(球面三角法)'이라는 기하학적 지식을 알아야 하고 또 한가지 난제는 항공기나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지도에는 지도의 작성년도인 16세기에서 300년이나 지난 후에 확인된 남극대륙이 그려져 있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지도에 구현된 남극대륙의 해안선이 현재와는 전혀 다르다는데에 있다. 이 지도에서 남극의 빙설이 덮혀있지 않은 부분의 넓이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지도에 나타난 지구의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만 5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다. 필리 레이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X라는 고지도(古地圖)들을 보고 이 지도를 작성했으며, 그 지도의 한쪽에 자신이 참고했던 X라는 고지도들, 즉 20여장의 고지도와 콜럼부스가 항해할 당시 사용했다는 한 장의 지도를 언급해 놓았다.
과연 이 지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작성될 수 있었던 이 지도는 대체 어떻게 그 오랜 옛날에 제작 되었던 것일까? 필리레이스와 콜럼부스가 참고해서 만들었을 그 원래의 X라는 고지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오파츠들의 궁금증을 풀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풀리지 않은 오파츠의 신비
(사진: 이집트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는 지하1층 G실27, 29 벽면에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껏 고대와 선사시대 이전부터 내려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소개못한 오파츠들은 무궁무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발견되거나 잠들어 있을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피라밋 안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하트홀 신전의 조명기구 그림, 기원전 1세기경 침몰한 그리스 선박에서 발견된 고대의 컴퓨터 안티키테라의 기계, 현대의 기술로도 제작이 불가능한 인도 뉴델리 시내 한복판의 녹슬지 않는 철기둥, 고대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광학 수정렌즈, 기원전 2500년전에 만들어진 멕시코의 공룡 토우 등 현대의 과학으로 설명할 길 없는 수많은 오파츠들이 한맺힌 원혼처럼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뉴델리의 철기둥, 그리스 침몰선의 안티키테라 기계, 멕시코의 공룡 토우. 특히 맨 우측의 공룡토우에는 사람이 타고 있어 공룡과 사람이 한 시대에 살았다는 최근의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문명이 일직선상으로 계속 발전된다는 그릇된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인해 우리의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천년전의 고려청자를 아직도 구현해 낼 수 없는 우리가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던 고대문명과는 전혀 기원을 달리하는 또 다른 계통의 문명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번성하여 우리들보다 먼저 지구를 탐험하고 하늘을 날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여유로운 사고방식....그것은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또 다른 지혜일 것이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i33man@naver.com
*이 글은 스포츠조선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시간이 없는 지구, 피터 콜로시모, 도서출판 조선, 1993 초고대여행, 박우인, 예예원, 1994 충격의 고대문명, 찰스 셀리어, 한뜻, 1997 2500년간의 수수께끼, 발터 외르크 랑바인, 글담, 1997 세계의 불가사의, 나이절 분델, 지학사, 1986 고대유적, 모리노 다쿠미, 들녘, 2001
|
|
|
태그 : 고대,
고대사,
고대유적,
고지도,
공룡,
불가사의,
Ivan Sanderson,
삼엽충,
선사시대,
수정해골,
필리 레이스,
필리레이스,
아비도스,
아비도스 신전,
아이반 샌더슨,
하트홀,
오파츠,
오컬트,
이라크 전쟁,
이라크 전지,
occult,
OOPATTS,
Out of Place Artifacts |
트랙백0 | 댓글33 |
|
|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www.occultist.co.kr/tt/occult/trackback/22 |
|
|
|
|
| X파일에심취한후대학을우수한성적으로자퇴하고절에서'불목하니'노릇을하다비굴하게재입학한뒤겨우졸업장을따고사바세계로복귀했으나정신못차리다영성의길로대책없이들어선중생 |
«
2010/09
»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26 |
27 |
28 |
29 |
30 |
|
|
|
|
Total : 470773
Today : 58
Yesterday : 16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