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과 가슴의 차이점 판단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느끼며 바라보는 가슴이 되어라
왕년의 슈퍼스타 남진 선생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맞는 말입니다. 얼굴이야 지금은 예쁘지만 곧 쭈그렁 망탱이가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죠. 즉 고정된 실체 같지만 사실은 그저 흘러가는 현상일 뿐인지라 마음 보다는 격이 한층 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녀석은 영원한 실체를 가진 그 '어떤 것'일까요?
아쉽게도 마음 역시 그리 믿을만한 놈은 아닙니다. 오히려 육신보다도 더 빨리 변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죠.
그렇다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궁극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슴으로 대변되는 '진아(참나)'입니다. 가슴은 느낄 뿐...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현상을 그저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가슴의 주인...그것이 바로 진아입니다.
사실 마음과 가슴은 근원이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은 영어로 소문자 mind이며 가슴(의식)은 대문자 Mind로 표시하는데... 따지고 보면 우주적 의식 Mind에서 인간의 마음 mind가 나온 것이죠.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펼쳐지는대로 놔두는 의식 Mind가 변형되어 스스로 제한을 가지고 인간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마음 mind인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차라리 저 가사를 "가슴이 예뻐야 여자지"라고 바꾸는 것이 더 나을뻔 했겠습니다만... 음란한 가사라고 여겨서 아마 금지곡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엄마가 갓난 아이에게 젖가슴을 물리는 것은 그야말로 '가슴'을 주는 행위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과 자비의 근원인 진아로 품는 행위인 것이죠.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남자는 골백살을 먹어도 어린애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도 모르게 근원으로 끌리는 것이죠.
다시 정리하자면... 마음과 가슴은 근원은 같지만 전혀 별개의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만 그 예쁜 마음 역시 '나'가 아닙니다. 나의 진정한 실체는 그 예쁜 마음을 아무 판단없이 바라보는 가슴, 즉 근원의 의식이죠. 예쁜 마음과 나쁜 마음은 "가슴으로 느끼는 의식"이 아니라 "머리로 분별하는 판단"의 작용입니다. (가슴=느낌/ 마음=판단)
오늘은 예쁜 마음이 왔지만 내일은 또 어떤 마음이 나를 찾아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얀 스크린 위에 비추인 활동 사진의 영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은 액션영화가 흘러 나오지만 내일은 포르노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영상일뿐... 진정한 나(스크린)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새하얀 스크린만 남을 뿐...조금전의 그 현란한 영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쁜 마음이 다가오면 밝게 웃다가 나쁜 마음이 다가오면 찡그리게 되는 것은... 그 마음을 나와 동일시 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마음을 나와 동일시 하는 한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요원하며 다음 생으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윤회를 하게 되는 메카니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 억제해서는 안됩니다. 이 우주는 거대한 의식의 집합체이고 마음 역시 그것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거나 묶어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더 큰 혼란만 자초할 뿐입니다.
인도의 성전 <바가바드 기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습니다.
괴로운 마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즐거운 마음 속에서도 그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탐욕과 두려움과 분노에서 벗어났으며, 생각의 흐름이 출렁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좋은 일을 만나든지 나쁜 일을 만나든지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확고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바가바드 기타 제2장 56-57절)
이처럼 우리들은 그 흘러가는 마음을 강제로 없애려 애쓰지 말고 그저 바라보며 깨어 있는 의식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을 외부에 뺏기는 순간 그 즉시 알아차리고 다시 근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선불교의 "이뭐꼬"를 하건, 마하리쉬 선생의 "나는 누구인가"를 따르건...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순수한 앎의 바라보는 상태"를 염원하건, 오쇼 선생의 "절대적 주시"를 가슴 깊이 새기건... 외부 형상에 마음을 뺏기는 즉시 근원인 진아에게로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가 늘 체득화 되어 흔들림 없이 일상화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석가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이요 대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by mulder (2008년 6월)-
멀더의 명상 한자락 ( www.occult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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