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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1   우리말로 풀어보는 귀신의 세계 <넋> (3)


우리말로 풀어보는 귀신의 세계 <넋>
영화속 공포의 발견4 | 2007/03/31 11:56




우리말로 풀어보는 귀신의 세계 <넋>
넋 (권철휘, 1973)

한국의 공포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소복 입은 처녀 귀신들이 마냥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듯하다. 나타날 시점에 나타나고 익숙한 패턴으로 화면을 부표(浮漂)처럼 떠다니는 모습에서 잊혀진 누이의 모습을 떠 올린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넋'이라는 영화에서 우리는 그러한 잊혀진 누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또 그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묵묵히 인내했던 전통적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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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

황량한 공동묘지를 보여주며 조상현 명창의 '성주풀이'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대가 불분명한(아마도 고려 말엽인 듯) 고전 괴담류의 영화이다. 초반부의 을씨년스런 무덤 경관은 관객들로 하여금 인생의 허무와 한계를 말없이 느끼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영화 속 주인공 춘삼이의 어머니와 아내는 불한당들(랑손과 부하들)에게 겁탈을 당한 후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벌어진 2년 뒤 춘삼의 어머니와 아내의 넋이 영산골에 나타나 무사 넷을 죽인다. 이에 놀란 그 지방 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춘삼에게 랑손을 도와 귀신을 잡도록 부탁하는데, 자신의 아들이요 남편인 춘삼을 알아 본 귀신들은 피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그리움을 참지 못한 아내 귀신은 시어머니 귀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타나 춘삼과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일로 인해 춘삼이가 그 귀신들과 혈연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된 랑손은 오히려 춘삼을 미끼로 귀신을 잡으려 하면서 혈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영화들이 늘 그러하듯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귀의 복수라는 기본 플롯을 중심으로 한풀이가 진행되지만, 이 영화는 인간과 귀신의 경계를 어느 정도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것이 과연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실제적인 복수의 주체자가 한 많은 귀신들이 아니라 그녀들의 남편이요 아들인 춘삼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영화 초반부에 보여지는 원귀에 의한 살인은, 본격적인 복수극의 전주곡 역할을 할뿐, 정작 자신들을 겁탈하고 죽인 랑손에게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을 저지른 것도 남자요 그 일을 마무리 짓는 것도 남자다. 이 영화에서 여자의 역할은 두 고부(姑婦)가 그저 흐느껴 울던가 기껏해야 집 근처로 찾아오는 범인들을 유인하여 복상사(腹上死) 시키는 것일 뿐 엄밀한 의미에서의 능동적인 복수극은 좀체로 나타나질 않는다.

부당한 판결을 내린 강간 사건 법정을 보는 듯,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그녀들이 영화속에서도 홀대 받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현란한 특수효과는 없으나 화려한 복식(服飾)과 기묘한 느낌의 영화 속 세트장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며, 흘러간 우리 영화계의 대표적 악역 전문 배우였던 최봉(랑손 역) 선생은 극중에서 자신의 주특기인 악역을 충실히 해내고 있으나 가끔씩 그 비열한 눈빛이 너무나 귀여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재미난 캐릭터다.

[작품 정보]
제목: 넋(1973)
감독: 권철휘
기획: 변장호
배우: 신 숙, 윤양하, 이경희, 최 봉, 방수일, 장 혁, 이기영, 장정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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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컬트 분석]

흔히들 귀신과 혼백의 구분을 잘하지 못하여 두루뭉술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쉽게 정리하자면 혼백은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천적인 에너지원으로서의 존재이며, 죽음을 맞아 육신을 잃었을 때 그 혼백이 어떤 형상으로 변해서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鬼라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즉 우리 앞에 기괴한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鬼라는 소리다. (귀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목두기 비디오' 편 참조)

옛날 사람들은 인간을 하늘적 요소인 혼(魂)과 땅적 요소인 백(魄)의 결합으로 봤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 보면, 조선왕조의 틀을 잡은 대학자 정도전 선생도 일찍이 귀신과 혼백에 대해 논한적이 있는데, 인간의 생사는 마치 불이 타는 것과 같아서 불=혼(하늘적 요소), 나무=백(땅적 요소)이라고 설정하였다. 다 타고나면 불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나무는 재가 되어 땅에 남는 것이 인간의 혼백과 같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라 할 수 있다.

혼과 백은 우리말로 각각 넋과 얼이라고 하는데, 넋은 하늘적 요소인지라 "넋을 잃었다"라는 표현을 하며 얼은 땅적인 요소라 "얼이 빠졌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이것을 한자성어로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한다.

넋이라는 말을 풀이해 보면, '넋'은 '넉'에 'ㅅ'이 첨가된 형태인데 고대에는 말(語)이라는 뜻의 단어인 '널'이 원형이었다. "넉살이 좋다"고 할 때의 넉이 바로 그것인데 '살'은 고어에서 '소리'라는 뜻을 지니므로 "말소리가 장황하고 번드르르 하게 좋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무당이 내림굿을 할 때 새로운 무당으로 탄생하려면 일단 입에서 예언같은 것이 줄줄이 나와야 하는데, 이것을 무속에서는 "말문이 열렸다"라고 한다. 말문이 열렸다는 것은 무당에게 실린 영적인 존재의 이름을 외치는 것인데, 고대인들은 무당의 입에서 외쳐 나오는 말을 영적인 신과 동일시하여 생각했다. 즉, 말이 곧 신인 동시에 영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인 혼(魂)을 말(語)의 뜻을 지닌 '넋(널)'로 표시했던 것이다.

얼은 "우리 겨레의 얼"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얼'이다. 흔히들 '얼간이(얼이 가버린 사람)'라는 말을 쓰는데,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 주로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얼이란 우리의 인식작용과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고어에서 '얼'은 '알'이라는 단어와 종종 함께 쓰이곤 하는데, 알은 아침이라는 뜻이며, 얼은 저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저녁 무렵을 '얼'이 변형되어 '어둡다', '어스름하다'고 하는 것이다. 고로 '알'은 아침 즉, 알(卵)이 깨어나는 시간과 생명이 개시하는 공간을 뜻하며 얼은 아침이 되기 전에 생명을 잉태하는 저녁 무렵 섹스의 시간을 뜻한다.

중세에는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을 '얼다', '얼우다'라고 했는데, 단순히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정신(얼)의 교감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영육이 일치된 섹스의 능력을 가진 성인 남녀를 '어른'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섹스를 했으니 생명이 태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생명 탄생을 뜻하는 '알'이 변형되어 사람에게는 '아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물에게는 '아지'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송아지, 망아지 등이 다 그것이다. 물론 조류에게는 '알(卵)' 그 자체로 쓰이고 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얼'의 종합적인 뜻은 "생각 또는 생명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탕은 무엇인가? 곧 땅이다. 그런 연유로 조상들은 넋을 하늘적 요소로 봤으며 얼을 땅적 요소로 봤던 것이다.

말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우리 겨레는 통찰력이 대단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옛날에는 얼굴을 얼골이라고 했는데, 앞으로는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얼굴 관리를 잘 해야할 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정신(얼)이 깃들어 있는 틀(골)이기 때문이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i33man@naver.com]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우리말의 상상력, 정호완, 정신세계사, 1991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박갑천, 을유문화사, 1995
우스개 별곡, 서정범, 1992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용옥, 통나무, 1989
엣센스 국어대사전, 이희승, 민중서림, 2003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궁리, 2001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 지쥰, 동문선,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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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iff 2007/04/01 15:21 L R X
흥미로운 글 빠짐없이 보고 있습니다 ㄳ
멀더 2007/04/01 19:16 L X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
미디어몹 2007/04/02 09:12 L R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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