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두기 비디오 (윤준형 감독, 2003) 이름 붙이지 못한 정체 모를 원귀
비디오 테이프를 켜자 남녀의 낄낄 거리는 음성이 들리며 음침한 여관방 침대가 클로즈업 된다. 남자는 여자를 눕히고는 옷을 벗기려 하고, 여자는 싫지 않은 듯 교성을 내 비치는 순간...방 한켠에 놓여져 있던 거울 속에서 이상한 남자의 형상이 어른거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분명 어떠한 형상이 두 남녀를 노려 보고 있음이다. 과연 그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진: '목두기 비디오' 포스터]
야릇한 몰카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윤준형 감독의 2003년작 '목두기 비디오'라는 작품으로서, 마치 한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다큐멘터리적 공포물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여관의 몰카에 우연히 잡힌 한 남자의 괴이한 형상이 인터넷을 타고 전파되어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이 사건을 접하게 된 영화 관계자들은 귀신의 정체를 밝혀 나감과 동시에 그 추적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필름에 담게 된다.
제작팀이 처음 파헤칠 부분은 그 몰카가 촬영된 여관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여관을 찾아 그 방을 확인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미스테리극이 시작된다.
[사진: 영화 속 몰카의 한 장면. 남자의 등 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고 있다]
그 여관의 주변을 조사하던 중 여관 주인이 20여년전에 부산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극과 관련된 인물임을 알게 됐고, 급기야는 부산까지 내려가 무당을 대동하여 살인사건이 일어난 흉가를 수색하게 된다.
그 와중에 몰카 비디오 속에서 "아버지"라고 외치는 귀신의 음성을 파악하게 됐는데, 그 '아버지'라는 말은 이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 단어이며, 한스럽게 죽은 귀신의 단말마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과연 이들이 찾아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사건의 내막은 어떤것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 귀신은 누구였단 말인가?
감독 윤준형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면서, 공포의 동시성을 강조한다. 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그 동시성이 공포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으로 빨려 들 수 밖에 없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숨막힐 듯 전개되는 추리적 구성 그리고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반전까지...이 영화 목두기 비디오는 1시간 남짓한 상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의 웬만한 대작 공포물이 범접하지 못할 귀기(鬼氣)와 재기(才氣)를 지닌 보기드문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정보] 원제: 목두기 비디오(Mokdugi, 2003) 감독: 윤준형
[사진: 끔찍한 살인 사건을 취재한 신문 기사 자료]
[영화 속 오컬트 분석]
목두기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풀이가 되어 있다.
목두기: [―뚜―][명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귀신의 이름.
즉, 뜬금없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키는 정체 모를 귀신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 목두기인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귀신이 출몰 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한이 서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한이 서렸다는 것은 정상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두기들은 자신의 한이 서린 곳이나 생전에 집착이 갔던 곳에 정착을 하게 되며,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자신의 한을 설명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심령학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붙박이 귀신들을 일컬어 지박령(地縛靈)이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시간의 경과를 느끼지 못하고 계속 규칙적으로 죽기 직전에 했던 일들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두기 비디오에 나온 귀신처럼 한이 맺혔거나 교통사고 사망자처럼 급작스럽게 죽음을 당한 경우,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산 사람들과 접속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목두기들을 나름대로 분류하여 구분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무섭고 한이 많은 귀신이 손각시(孫閣氏)라는 처녀 귀신이다. 남자와 성적인 경험이 없는 처녀가 죽어 그 못 푼 한을 참을 길 없어 악귀가 되는데, 살았을 때 연분이 있던 사람들을 괴롭히고 해치는 경우가 많다하여 모두들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처녀가 죽으면 남자의 옷을 입혀서 머리를 아래로 하고 다리를 위로 하여 거꾸로 매장하고, 가시가 많이 달린 나뭇가지를 관 주위에 묻어 귀신이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또는 교차로 아래에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매장해서 많은 남자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게 함으로써 성적인 충족을 시켜 악귀가 되지 않게 하는 비방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외에도 물에 빠져 익사한 사람의 귀신인 ‘수귀(水鬼; 물귀신)’, 젊어서 죽은 아내가 이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처에게 앙갚음을 하는 ‘미명귀(未命鬼)’, 어려서 죽은 아이의 혼령인 ‘새타니(동자보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후 오히려 호랑이를 위해 사람을 홀려 보내는 ‘창귀’ 등이 대표적인 목두기들이다. 창귀는 ‘영선(靈仙)’, ‘홍살이 귀신’, ‘굴각(屈閣)’, ‘가문글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아는 사람들의 집으로 가서 살살 꾀어 호랑이 앞에 데려다 주는 무서운 악귀다.
어려서 죽긴 죽었으되 일부러 끔찍하게 죽음을 당하여 원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주 갓난 어린 아이를 뒤주 속에 가둬서 물 한모금 주지 않고 굶기다가 젖을 보여줄 때 손을 내밀면 그 손가락을 싹뚝 잘라서 무당이 지니고 다니면 신묘한 능력을 얻게 된다는 섬뜩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 태주신(胎主神), 일명 사지신(死指神)이라고도 한다.
심령학자들에 의하면 교통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되는 장소나 익사 사고가 많은 곳에는 이러한 원귀(寃鬼; 怨鬼)들이 득실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목두기 비디오에 나오는 폐가의 전경. 목두기들은 이렇게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원귀는 왜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인즉 사람에게는 혼(魂)과 백(魄)이 있는데 사람이 죽게 되면 혼은 하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땅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것을 일러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하는데, 혼과 백이 서서히 분리될 시간적 여유도 없이 급작스럽게 죽음을 당하게 되면 혼은 저승으로 올라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되어 원귀가 된다는 것이다.
원귀란 글자 그대로 원한 맺힌 귀(鬼)라는 뜻인데, 흔히들 귀신(鬼神)이라고 얘길 하지만 鬼와 神은 각기 별개의 뜻을 가진 용어들이다. 고대인들은 이 우주 만물이 모두 살아 있다고 믿었으며(애니미즘; animism) 그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내재적 힘이 바로 '神(dunamis)'이라 했다. 그리고 그 神이 구체화된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을 일러 鬼라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혼백은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神적인 존재이며, 죽음을 맞아 육신을 잃었을 때 그 혼백이 어떤 형상으로 변해서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鬼라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분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그의 저서 금오신화(金鰲神話)에서 鬼라는 것은 음(陰)의 정기이고 神이라는 것은 양(陽)의 정기라고 했는데, 鬼는 굽힌다(屈)는 뜻을 지니고 있고 神은 펼친다(伸)는 뜻을 지니고 있다 했다. 그러므로 귀와 신이 잘 조화될 경우 굽혔다 폈다를 잘 하여 어느 한곳에 치우침이 없으나 神이 막혀 펼수가 없으면 鬼는 웅크리기만 하여 가슴이 답답해진 연유로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는 요귀(妖鬼)가 된다 했다.
예부터 음력 정월 열엿새(1월 16일)는 귀신날이라 하여 이러한 귀신들이 따라 다닌다는 속설이 있어 먼길 여행을 삼가며 집에서 자숙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나라에서는 조선 태조때 봉상시(奉常寺)라는 관청을 만들어 총 열다섯 종류의 귀신들을 제사지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 가족들은 고인을 그리워 하며 슬픔을 가눌 길 없었을 것이며 그것은 곧 민심 이반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이를 묵과하지 않고 죽은 사람의 원혼을 달래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과연 누가 미신이라고 하겠는가?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등 국가적으로 큰 재난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과연 조선시대만큼이나 그들의 한을 제대로 풀어주었는지 의문이다. 인본 주의에 입각한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인들보다 고차원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Written by Mulder (i33man@naver.com)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용옥, 통나무, 1989 한국의 귀신, 정진태, 보성 출판사, 1994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 지쥰, 동문선, 1993 말썽꾼 귀신도 내말은 듣지요, 조성안, 청하, 1999 업장소멸, 안동민, 서음출판사, 1992 퇴마록 해설집, 이우혁, 들녘, 1995 한국의 민속(신과 귀신), 임동권,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1985 연암소설, 박지원, 작가문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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