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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들의 연애 상담
멀더의 명상 한자락6 |
2010/02/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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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들의 연애 상담 여자에게 말 거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요새는 남자는 물론이요 여자분들도 결혼 적령기라는 말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시대가 온듯 하다. 예전 처럼 맞선 보고 대충 결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조건이면 조건, 사랑이면 사랑...확실한 주관이 아니면 그냥 연애만 하며 살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말이 쉬워 연애지...실제로 연애하는게 그리 쉽냐 이거다.
내 주변에도 나이 마흔 줄에 접어든 총각들이 부지기수요 이팔 청춘 못지 않게 연애 상담을 해오는 후배나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 냉엄한 현실... 게다가 요새는 커뮤니티 회원 분들도 간혹 자신의 연애 상담을 요하는 메일을 보내 오시니... 전문 카운셀러도 아니고 이거 참... 먼저 결혼한 죄로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여자들의 연애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주제가 다양한데 남자들은 거의 하나로 귀결된다.
"어떻게 꼬셔요?" -_-;;;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솔직한게 제일 좋아. 부끄러우면 부끄럽다 얘기를 하고, 좋으면 좋다고 얘기를 해봐"
그러면 또 이렇게 묻는다.
"얘기를 해도 잘 먹히지 않아요. 왜 여자들이 나를 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되 묻는 남자들은 여자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여자한테 접근했는지를 말이다.
이제부터 본론 들어 간다. 잘 들으시라.. 총각분들한테 우선적으로 말씀 드릴 것은.. "여자를 꼬신다"라고 머리 속에 입력한 사람은 평생 여자를 꼬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꼬시겠다는 생각을 하고 꼬시니까 못 꼬신다는 얘기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나는 반드시 불토를 장엄케 하리라'고 이런 말을 한다면 그를 진정으로 보살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진정한 보살이 아니니라.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고 말 한 것은 즉 장엄케 함이 아니다. 장엄케 하지 않는다고 해야 오히려 장엄케 한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니라."
금강경에 나오는 석가의 말씀이다. 외우질 못해서 생각나는대로 옮겼지만 원의는 그대로이니 별반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쉽게 풀이 하자면, 어떤 행위를 한다고 했을 때 그 행위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야 진정으로 그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금강경 전체가 이와 같은 컨셉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 한 줄만 제대로 터득해도 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왜 이 얘기를 했는가 하면...바로 여자를 꼬신다는 생각을 하고 여자에게 접근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기 위해 부처의 말씀을 거론한 것이다.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상대에게 접근하면, 그 상대방 여자에게 나의 무의식적 상념이 전해져 나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논하는데 성스러운 석가의 말씀을 끄집어 냈다고 뭐라 그러실 분들이 있겠지만, 원래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하는 법이다. 인간사에 두루 두루 통하는 법이야 말로 진정한 법이 아니겠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코 웃음 치실 분은 치셔도 좋다. 그렇지만 이건 많은 사람들의 경험 체계에서 우러 나오는 명백한 사실이다. 단지 여러분들이 느끼질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렸을때 직접 체험한 얘기 하나를 해 드리겠다.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전단지 배포를 해 본적이 있었다.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별거 아닌 일 같아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쪽팔리고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길거리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찌라시를 나누어 준다는 것......대수롭지 않게 여기시겠지만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라. 길거리 지나다니면서 여러분은 찌라시를 주는 그대로 다 받았는지를....
아무말 없이 받는 다면 그건 정말 부처님이다. 어떤 사람은 욕 비스무리하게 까지 내 뱉는다.
"아이씨, 바빠 죽겠는데..."
뭐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 축에 든다.
암튼 찌라시 3, 4백장 이라고 하면 금방 돌릴 것 같은데, 초보자들은 네 다섯 시간 걸리기도 하니, 그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나도 그런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쪽팔림도 없어지고 요령도 생겨 그 정도의 양 쯤은 2시간 정도면 다 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고 ... 더 빨리 돌린 후 편안히 쉬다가 일찍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정말 무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기록 단축은 정말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나 하게 된다. 여태까지 한 손으로 찌라시를 돌렸는데, '이것도 소중한 하나의 직업이다'라는 생각으로 프로 의식을 발휘해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드렸더니 사람들이 찌라시를 받는 확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마인드 컨트롤 까지 동원하여 '바쁘신 와중에도 이 찌라시를 받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속으로 뇌까리며 전단을 돌렸더니....과연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30분안에 300장을 돌리는 쾌거를 이룩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을 읽고 내 정성을 알아 차렸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얻은 결과, 남들 두세시간 걸리는 일을 30분 안에 해 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아예 가방을 2개 가지고 다니면서 2, 3천장을 돌리게 되었다. 당연히 수입도 늘어 났겠지?
하물며 아르바이트도 이럴진대 나의 반쪽(?)을 만나는 신성한 거사에, 꼬신다느니 술 먹여서 골뱅이를 만들겠다느니.. 하는 상념을 머리 속에 집어 넣고 가면 그 만남이 제대로 되겠는가?
물론 어쩌다 한 두 번은 성공할 수 있겠지만, 정말 인생의 동반자로서 결혼 상대를 찾고자 하시는 분은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자들이 그렇게 짱구가 아니다. 주변 여자분들한테 한번 물어보시라. 남자 만날 때 그 남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자신에게 접근하는지 거의 알고 있다고 말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꼬신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인간적으로 친해질 생각을 먼저 하시기 바란다.
동성 친구 중에 멋있는 놈이 있을 때, 그 놈을 꼬셔야 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동성연애 빼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몇 몇 이성을 사귀게 되면 금방 감이 잡히게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내공이 쌓이게 되면, 자신의 속에 있는 생각을 그냥 말해도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을 해 나가는 와중에 개인의 차가 있어서 학습이 느리고 빠른거는 있다. 혹시 늦더라도 남이 어떻게 하든 신경쓰지 말고 내 갈길만 그냥 가시라.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남녀간의 문제는...남자가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여자로 보기 때문에 생기며,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하신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이성도 사람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인간적으로 접근을 하면 최소한 면전에서 구박 받지는 않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수 많은 선남선녀들이 부디 좋은 인연들 만나시길 두손 모아 기원하는 바이다.
ps-위에 있는 사진은 영화 '나쁜 남자' 중 한 장면인데, 여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르면 이처럼 폭력을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있어 폭력은 여자에게 내뱉는 변형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Written By Mulder (2010.02.19)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http://www.occultist.co.kr ) 네이버 명상 카페 오컬트 아쉬람 ( http://cafe.naver.com/occultmul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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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깨달음의 보고서 <싯다르타>
멀더의 X파일 도서관2 |
2008/10/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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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깨달음의 보고서 <싯다르타> 가슴을 적셔 줄 헤르만 헤세의 영성 구도기
가끔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과연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10살 먹은 소년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톨스토이의 책을 자연스럽게 꺼내드는 것과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동구매로 산 톨스토이 책을 들춰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냥 읽어대는 독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될 수 없으며, 한 줄 한 줄이 가슴 속에 박힐 때에만 진정한 독서라고 여긴다. 그렇게 가슴 속에 아롱지는 독서가 아니면, 차라리 아니 읽느니만 못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에 가슴이 준비 안된 채 억지로 훓어본 책은, 나중에 커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마치 그 책을 내가 이해한 것 처럼 여겨진다는 소리다. 그래서 누가 그 책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어..그거?"하면서 짐짓 아는체를 하게 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한번 때를 놓치게 되면 다시는 그 책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기억 속에는 '읽은 책'의 목록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이런 획일화된 교육의 피해를 입은 학생 중 한명으로써,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만화책이나 실컷 읽을 것을 어줍쟎게 세계문학전집이니 뭐니 수박 겉핧기로 넘겨 버린 그 시간들이 왜 그리 허망한지 가끔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이러한 피해 사례들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헤르만 헤세"이다. 헤르만 헤세하면 <데미안>을 떠 올리게 되는데, 10대 아이들 중에서 굉장히 영성적인 아이들을 빼면 이 책을 이해하는 아이도 극히 드물 뿐더러, 읽는다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그 선입견으로 인해 헤세의 다른 책을 접하는데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을 한다.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물론이요 영적체험의 절정인 <유리알 유희>에 이르게 되면 두손 두발 다 들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20대 30대가 되면 저절로 가슴이 열린다는 소리는 아니다.)
필자는 중학생 시절 때 처음 헤르만 헤세의 책을 접했지만, 도무지 뭔 소리를 해대는지 단 한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독후감 숙제는 해야겠는데, 읽을 수는 없지.. 인터넷이라도 있으면 지식 검색을 해서 베껴가면 되겠지만 그 당시에는 요원한 일이었으니 어쩌겠는가? 헌책방에서 훔친 <선데이 서울>을 미끼로 공부 잘 하는 아이의 독후감을 슬쩍 베낀 일이 있다. 물론 '똑같이 베끼면 안된다'는 조건 하에...
그런데 요즘 우연치 않게 헤세의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어렵던 내용들이 가슴 속에 산탄 총알 맞은 것 처럼 박혀 대는 것이었다. 예전같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메세지들이 메마른 대지가 비를 빨아 들이듯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서는 때가 있다는 소리다. 가장 적당한 때에 책이 나를 찾아 오는 것이지, 내가 책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깨달음이 가장 최적의 시기에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에게 다가오는 그 깨달음의 시기를 가장 적절하게 포착하여 아름다운 문학으로 완성시킨 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헤르만 헤세의 걸작 <싯다르타>이다.
'싯다르타'라는 이름은 흔히들 석가모니 부처님의 존함으로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바라문 집안 귀족 청년으로 설정되어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고타마'라는 이름으로 따로 출연하고 있다. 헤세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존함 싯다르타와 그 분의 깨달음의 과정 등을 이 작품 속에 차용한 것은, 작품 속 주인공 싯다르타의 세속 생활과 대조시켜 인간 존재에 놓인 양극성을 융해시키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성인과 세속적 인간 사이의 간극을 없앤 것이다.
싯다르타는 전도 유망한 바라문 집안의 귀족이다. 젊은 나이지만 너무나 고귀하고 성스러워서 친구들은 물론이고 노인이나 꼰대들까지 우러러 보는 그런 청년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일뿐, 정작 자신의 내부에서는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올라 온다. 그러다 어느날 길거리에서 고행을 하는 사문들을 보고는 출가하기로 결심,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집을 나서게 된다. 사문 집단에 들어간 싯다르타는 단식, 명상, 타심통, 동물 치환법 등 온갖 초능력을 배우게 되는데.. 그러나 여기에서도 깊은 내면의 갈증을 씻어내지 못하고 고빈다와 함께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얼마쯤 가다가 그들은 인도 전역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고매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이름하야 고타마,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었다. 석가모니 고타마의 법력에 홀딱 빠진 친구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고타마의 제자가 되자고 종용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싯다르타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길을 떠나게 된다. 그렇지만 싯다르타는 길을 떠나기전에 크나큰 선물을 안고 가게 되었으니, 바로 석가모니와의 독대 그리고 선문답이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서는 석가모니 보다 더 위대한 스승을 만나지 못할 것이며, 결국 홀로 깨달음을 얻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 그렇지만 그는 구도의 길을 걷는 대신 고급 매춘녀와 사랑도 나누고 재벌의 친구가 되어 같이 사업을 하기도 하면서 철저히 세속적인 길을 걷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 속인들과 구별되던 그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도박과 섹스에 중독된 중늙은이가 되어 버린것이다. 깨달음은 항상 절망의 늪에서 샘솟는 것이던가! 늙고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을 원망하며 끝없는 절망에 빠져 있던 싯다르타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신성한 '옴'의 소리였다. 그 소리가 가슴을 후벼파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슴 속의 구도심이 다시 용솟음 치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에 쌓아놨던 모든 것을 미련없이 버린채 무작정 길을 떠나 어느 이름 모를 뱃사공의 조수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매춘녀에게는 싯다르타의 씨가 자라고 있었으니 후일 그로인해 큰 절망과 깨달음을 동시에 얻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젊은 시절 헤어졌던 친구 고빈다를 만난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우리가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이 존재할 뿐이지."
헤세의 작품 <싯다르타>의 위대함이 바로 이것이다. 깨달음은 말로써 전해질 수 있는 어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그때 그때 깨달아가는 그 순간들의 소중함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수행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 온 고빈다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우리들도 고빈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같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또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네. 이 세계는 매 순간 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네.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정말 눈물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종교의 지도자나 성직자들이 그토록 꺼려하고 죄악시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배척하고 밀어낼 대상이 아니라는 것, 결국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원해서 경험하고 겪었다는 것...그리고 우리는 매일 매일 참회를 드려야 할 죄인이 아니라 다만 피어 오르는 감정과 상황을 지켜보고 인정하고 수용하면 된다는 이 자비의 법어. 서양인 헤세가 어떻게 동양의 고승들도 이해 못하는 이런 위대한 법어를 설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헤세가 이미 어느 선을 넘어 버린 깨달은 존재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함부로 집어들 수 없는 책, 그러나 일생에 꼭 한번은 집어야만 할 책... 영혼을 적셔줄 그 무언가를 찾는 당신에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권하는 바이다.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번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2
written by mulder (2008.10.26)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www.occult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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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승은 때가 되면 나타난다
멀더의 명상 한자락4 |
2008/08/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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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찾기 위해 애쓰지 말라 진정한 스승은 때가 되면 나타난다
바야흐로 영성의 시대가 열렸다. 기존의 낡은 종교 관습들은 힘을 잃고, 타성에 젖은 수행 방법들은 몇 치수 크게 재단한 교복 처럼 영성 신입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7년 미국 세도나 강의 현장에서 찍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사진
서양의 살아 있는 현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현재 한 개인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속도는 과거 1000년 전보다 무려 1000배나 빨라졌다고 말씀 하시면서 "선도, 양생, 차크라 개발, 쿤달리니, 단전호흡(호킨스 박사 표현을 빌자면 '이상스런 호흡') 같은 억지스런 방법을 쓰지 않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기독교의 구약 성서는 차라리 아니 읽으니만 못할 정도로 영성이 낮은 책으로 전락했다."고 언급한다.
이렇게 정신세계의 판도가 새롭게 변모되는 것이 한편으론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 않게 영성의 폐해가 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유명 단학 수련 단체의 비리와 MBC PD수첩에서도 방송된 영성단체 붓다필드의 사건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모르긴 몰라도 영성을 빙자한 거짓 스승 파문은 아마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듯 보인다.
그렇다면 영성에 목마른 이들은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영성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많은 분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지도해 줄 스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스승은 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스승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나를 찾아 오는 것이지 내가 스승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위대한 스승을 알아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낮은 정신상태의 사람을 끌어 들여 고초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스승을 알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쇼 라즈니쉬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한번 읽어 보시면서 가슴으로 느끼시길 바란다. 우리는 ‘무’에서 와 ‘무’로 돌아간다. 그 중간에 일시적인 꿈이 있다. 왜 우리는 거기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왜 우리는 거기에 그토록 사로잡히는가. 우리가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중간에도 우리는 ‘무’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성이다. 그저 ‘무’가 되는 것.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고 아무것도 비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선객(禪客)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장작을 패고 우물에서 물을 길으며 그는 말한다. “이 얼마나 기적적인가. 이 얼마나 근사한가” 그는 삶의 사소한 일들을 계속한다. 그것이 선(禪)의 멋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것을 추구한다.
바로 어제 나(오쇼 라즈니쉬)는 U.G 크리슈나무르티(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는 다른 인물)의 강의집을 읽었다. 그는 라마나 마하리쉬를 보러 갔다고 한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라마나 마하리쉬가 야채를 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야채를 썰고 있다니! U.G 크리슈나무르티는 틀림없이 황금옥좌에 앉아 있을 어떤 특별한 사람을 보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마루에 앉아 야채를 썰고 있다? 주방을 도우려고 야채를 준비한다? 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 다음날 갔을 때는 그가 농담집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영원히 끝이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이 사람은 평범하기 그지 없다.” 그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아쉬람을 떠났다. 거기엔 있을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사람, 라마나 마하리쉬는 세상에 태어났던 가장 위대한 붓다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행위는 그의 불성을 보여준다.
U.G 크리슈나무르티는 위선자를 찾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그의 평상심과 그 아름다움, 그리고 그 은총을 볼 수 없었다.
U.G 크리슈나무르티는 스와미 시바난다와 수년을 함께 살며 요가를 수련했다. 그리고 나서 7년 후에 그가 별볼일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7년후에 말이다. 그는 7년이나 걸려서 그걸 알았다. 둔하다는 표시이다. 시바난다가 별볼일 없음을 아는데 7년이나 걸리다니. 7초면 충분한데! 라마나 마하리쉬의 위대함을 알아보는데도 7초면 충분하다. 그가 야채를 썰고 농담집을 읽고 만화책을 보는 걸 봤으면 말이다. 일반적인 마음은, 에고적인 마음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에고는 언제나 더 큰 것, 더 큰 에고를 찾고 있다. 그러나 진실된 성자는 에고가 없다. 마하리쉬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다. 그것이 그의 비범함이다!
석가모니 붓다는 인간이 통찰에 이를 때 그가 깨달았는지 아닌지 외부에서 알 수 있는 유일한 하나의 표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U.G 크리슈나무르티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눈을 들여다 봤어야 한다. 그는 오직 야채를 썰고 있는 손만 보았을 뿐이다. 그는 그의 눈을 들여다 봤어야 한다. 그가 어떠한 사랑을 가지고 채소를 썰고 있는지. 그가 사랑이었음을 보기 위해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어야 한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진인(眞人)이었다.
사랑은 유일한 표시이다. 하지만 사랑을 이해하려면 좀더 침묵하고 좀더 사랑을 지니고 좀더 열려 있어야 한다. 만일 그대가 “깨달은 사람은 어때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다면 놓치게 될 것이다. 아무런 선입견도 없어야 한다.
다만 진인의 눈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문득 어떤 것이 그대 가슴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대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그대의 에너지가 환하게 빛나며 그대 가슴이 새 힘으로 고동칠 것이다. 그대의 영혼이 날개를 필 것이다.
우리는 오쇼 라즈니쉬 선생의 이 글을 읽고 큰 위안을 받게 된다. U.G 크리슈나무르티가 누구인가. 나름대로 동양과 구미 각국에서 많은 대중에게 설법을 했던 인도의 구루 중 한 사람 아닌가? 그런 양반 역시 구도 시절에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오쇼 라즈니쉬 선생의 생전 모습
스승 찾기가 어렵다는 분, 깨어있기가 잘 안된다는 분, 바라보기에 지쳤다는 분…그런 현상은 비단 당신만 겪는 것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대 성자인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을 친견했음에도 그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U.G 크리슈나무르티의 둔함도 있었을진대, 우리들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가 겪는 여러 감정과 상황들은…그저 진아를 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노력없는 꾸준함만 있다면,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내게 주어진 과정을 통과하기에 충분하다. 한가지 덧붙일 말은, 노력한다는 것과 꾸준하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노력은 현재의 상태에 불만족 하여 미래의 어느 시점을 향해 애쓴다는 것이고, 꾸준함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시비분별없이 현재 매순간 다가오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는 미래에 살고, 하나는 현재에 산다. 비슷한 말 같지만 엄청나게 다른 말이다.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의 생전 모습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스승을 찾기 위해 애쓰지 마시라. 가르침을 받기 위해 누군가에게 함부로 내 몸을 의탁하지 마시라. 스승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눈앞에 라마나 마하리쉬 같은 위대한 스승을 세워 놓고서도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결코 조급할 필요가 없다. 석가모니 말씀처럼 자신을 등불 삼아 꾸준히 정진을 하다보면, 아주 적당한 때, 더 이상 스승이 필요 없어질 그 순간에 진아(참나)는 다양한 모습의 스승으로 현신하여 당신에게 화룡점정(畵龍點睛)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림 속의 용이 날아 오르게 하듯이 당신을 날아 오르게 한다.
그러나...날아 오르리라는 그 기대 마져도 버려 버리고 매 순간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나니...인샬라...
Written By Mulder (2008.8.11)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www.occult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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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삶에 대하여
멀더의 명상 한자락4 |
2008/06/1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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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삶에 대하여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진통의 시간
이 글은 <멀더의 오컬트 아쉬람 카페(http://cafe.naver.com/occultmulder)> 회원이신 기쁨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입니다. 백수 생활을 하시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번민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제 경험을 섞어가며 몇 말씀 드린 것이오니, 여러분들께서도 기쁨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기쁨님께 답변하는 입장에서 한번쯤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될 듯 합니다.
안녕하세요 멀더님
백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 오늘의 끼니가 어려운 백수일 경우..물론 백수라도 노가다나 알바는 가능하겠지요. (정말 장애우인 경우는 노가다 나 알바가 힘들겠지만) 또한 백수라도 물론 눈높이를 낮추어서 정식직장에 취업도 가능합니다. 눈높이 낮추기가 쉽지 않아 저같은 경우 다년간 아예 노가다를 했었지요. 저런 직장에 들어가느니 노가다 하면서 기회를 노리자고........ 지금이 아닌 언제 있을지 모를 미래의 좋은 직장을 바래면서..............
바램과 희망.의식적 창조,가슴뛰는 삶 헌신과 복종.내맡김
이런 관점에서 현재 이땅의 일천만(?^^) 백수들은 어캐 살아야 하나요??
물론 저는 다년간의(대학졸업후 3년?)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만 2년간의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제 주위엔 백수가 두 명 있습니다.(공무원 준비생 3년차;올해 합격이 안되면 완벽한 백수가 되지요.지금은 반백수)
또한 지금의 직딩은 언제 하루 아침에 백수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는 실정입니다. 저 또한 지금의 일이 맘에 들지 않아 ( <======현재를 저항하고 있는것이겠지요?) 백수가 되고 다시 시작하고픈 사람이므로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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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멀더입니다 ^^
백수의 삶이라... 글쎄요.. 같은 백수라 해도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개개인의 맞춤 답안은 없을 듯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근원적인 문제를 한번 건드려 보도록 하죠.
일단 저 역시 백수입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가 올해로 5년 째입니다. 5년전에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 치우고..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씩 들어오는 원고 청탁이나 영화 칼럼, 인물 인터뷰 정도로 조금의 벌이는 하고 있지만 그 알량한 몇십만원 마져도 홀아버지 생활비로 몽땅 털어 드리고 나면 거짓말 안 보태고 한달에 5만원 정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차비로 다 나가게 되죠..
그러면 먹고 자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 했느냐? 급할때는 노숙자 급식소를 이용하고 영양 보충 좀 해야겠다 싶으면 아는 양반들한테 연락을 해서 술 한잔 사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잘 가는 노숙자 급식소는 을지로3가 기업 은행 앞입니다. 중앙극장 옆이죠. 기다리는게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군대 짬밥과 비교해도 나름 훌륭한 음식입니다. 잠은 병원의 중환자 대기실이나 복도에 있는 소파를 이용합니다. 환자 보호자인 것 처럼 위장을 하죠.
제가 원래 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한때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직장에 다니며 술, 여자, 유흥에 쩔어 살았었죠.. 그러다 큰 시련이 찾아 왔습니다.. 어머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식물인간이 되셨던 것입니다.. 6년동안 병원과 집을 왔다갔다하며 대소변 수발을 들다보니 심신이 피폐해져갔습니다. 말이 6년이지 의식없는 어머니의 식사를 먹여 드리고 모친의 음부를 만지며 기저귀를 하루에도 몇번씩 갈아야 하는 것은... 아들된 입장에서는 너무나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버지까지 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더군요.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끝이 없더군요. 동생이 전격성 간염으로 간 수치가 4천 이상 까지 올라가서 간 이식 수술 외에는 소생할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가 내려지더군요
게다가... 10여년 동안 기르던 강아지가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는데..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자궁암이라고 하더이다.. 병원비 등 빚은 늘어나고 은행, 카드 회사의 압박 등등 이 모든 일이 거의 동시에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기르던 개까지 이 지경이니... 걱정은 커녕 웃음만 나오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이 저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뽕을 뺄려고 작정을 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이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 난다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도 통하지 않는 얘기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그때 저를 보고는 "자살하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어쨌든 빚은 늘어나고 병수발 할 사람은 없고... 과감히 직장을 때려치게 됐습니다.. 퇴직금으로 급한 것 부터 막고 식구들 병수발을 하게 된거죠.
이때가 인생의 반환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질에 찌들어 살던 내가 정신적인 것을 찾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하늘은 결코 편한 상태에서 구도를 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심신이 편하면 구도를 할래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기에 각자가 견딜만큼 시련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시련과 고통이 없으면.. 아픔을 겪는 다른 이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기에 미리 그 경험을 시키는 것입니다.
자비심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극한의 고통을 맛본 연후에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이 없으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자들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으며 가슴의 느낌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자비심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고통을 경험한 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비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저 연말 연시나 추석명절 때 고아원 양로원 찾아가서 양말 몇개 쥐어주는 영적 허세와 사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맹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이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나를 비범한 인물로 만들기 위하심 이다."
여기서 '비범한 인물'이란..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잘난 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는 뜻이 아닌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맹자가 말씀하신 비범한 인물이란 시련을 통해 담금질이 된.. 그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연금술적으로 변형된 인간을 뜻하는 것입니다. 변모된 연금술적 인간은 오히려 그전 보다 행색이 더 초라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가족, 친지로 부터 무시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 그들은 그렇게 변모된 당신을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정말 무지막지하게 힘들더군요. 특히 금전적인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중에 땡전 한푼 없어서 백원짜리 쪼코파이로 끼니를 때울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익숙해 지리라 여겼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왕년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고통은 왜 익숙해 지지 않는 것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맷집 좋고 싸움 잘하는 사나이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시는지요? 하지만.. 그 역시 계속 되는 고통에는 손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물며 저 같이 나약한 인간이 고통에 익숙해 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던 것이죠.
그때 부터 신을 찾게 됐습니다. 그때 부터 내면의 진아(참나)를 찾게 됐습니다. 살아가야 할 희망이 꺼져갈 무렵 자연스럽게 근원을 찾아가게 되더군요.
고통이 클 수록 기존의 내가 깨어지는 속도는 빨랐습니다. 석가, 예수, 크리슈나, 마하리쉬, 오쇼, 데이비드 호킨스 같은 위대한 현자들이 스승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의 처지가 부끄럽지 않게 느껴지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촉매제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변화된 진동수에 따라 기존의 인간 관계는 모두 정리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새로운 도반들이 주변에 다가와 있더군요. 어찌 어찌 하다보니 팔자에도 없는 명상 강사 노릇까지 몇개월 하고 꽃같은 배필도 만나고 지금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스위스에 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처지가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백수요 신용불량자요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무능한 부적응자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는 불편하지 않은데 주변 분들의 마음을 편히 해 드리고자 노숙생활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 뿐입니다.
앞으로 제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것은 곧 지나갈 일이며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그때 그때 펼쳐지는 연극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저 주어진 연극판 인생이 있을 뿐이며 그 인생을 연기할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제 인생을 정리해 보여 드린 것은... 신세 한탄을 하거나 구도 과정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말씀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서 특별히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음을 보여 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왜냐?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 모든 것의 집합체가 현재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좋건 싫건 지금의 내가, 과거 수만생의 윤회를 하면서 최적으로 만들어진 '신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께서는 "하늘을 나는 저 새들도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있나니 아무 걱정말라"고 하셨죠. 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당신이 백수이건 무능력자이건 간에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먹여 살리고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살았는데 저보다 훨씬 능력 많으신 분들이 못 사실 일은 없습니다.
지금 부터 드리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가슴의 길을 따르십시요. 머리를 굴리지 마십시요. 그냥 흘러가게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지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가슴에 꺼림직한 부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길이 아닙니다. 가슴은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느낌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지구상 어떤 슈퍼 컴퓨터 보다 더 정확하게 당신을 이끌어 줍니다.
모든 고통은 <육신과 마음이 나>라고 하는 자아의식, 즉 에고(ego)의 소산입니다. 에고는 현재를 볼 줄 모릅니다. 항상 과거를 되돌아 보고 희망을 찾고 미래를 지향합니다. 그 모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세뇌되어 온 이 사회의 모순 구조 때문입니다.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따위의 도깨비 방귀 같은 소리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살았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겠죠. 희망 한국 21, 희망찬 미래로, 1등이 아니면 기억하지 않습니다...등등 온갖 표어들은... 당신의 에고를 키워서 사회 시스템에 안주하게 하여 딴 짓을 못하게 하는 독약과 같은 표어들입니다.
당신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한... 로또 복권 1등이 당첨되어도 당신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바램을 놓아 버릴 때... 희망의 끈을 과감히 잘라 버리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현재를 바라볼때... 그때부터 고통은 당신 앞에서 맥을 못추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깨달음에 집착하지도 마십시요. 많은 이들의 경우... 깨닫고자 하는 내면에는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은밀한 복수심이 깔려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따르게끔 하려는 허영심이 깔려 있습니다. 단전호흡을 해 대며 대주천 소주천을 돌려 과도한 육신의 건강을 구하고 차크라를 열어 초능력을 얻고자 하는 영적인 탐욕은 어찌보면 가장 큰 에고의 소산입니다. 돈을 추구하거나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욕망은 매 한가지입니다. 단지 분야가 틀릴 뿐입니다.
돈을 벌지 깨달음을 얻을지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리십시요. 결과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십시요. 이 일이 잘될 것인가 안될 것인가 하는 모든 판단을 내려 놓고... 모든 것을 신께 맡긴 채 그저 그 상황과 감정을 주시하십시요. 우리가 할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의 시스템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일부러 도를 닦으러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출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공과 실패, 칭찬과 욕지거리, 부와 가난...이 모든 것들에 영향받지 말고 그저 묵묵히 당신 앞에 다가오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해 나가십시요.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일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벌어지는 환영일뿐... 그리고 우리는 그 환영의 연극판에서 연기를 하면 될뿐... 우리의 본질인 진아는 그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습니다.
백수는 "사회 시스템에 길들여져 사는 사람들"과 "연금술적으로 변형된 인간"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입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받은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매트릭스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신의 미소이기도 합니다. 모든 두려움은 신에게 내 맡기고 천길 낭떠러지 같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되는 위치가 바로 백수입니다.
이제부터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당신의 가슴이 끌리는대로 하십시요. 그것만 떠 올리면 저절로 가슴이 뛰는 일을 하십시요. 무슨 일이 벌어지건...이 우주에는 어떠한 잘못도 없습니다. 그저 그러할 뿐입니다. 그저 인생을 살 뿐입니다. 백수의 길로 들어선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미력하나마 답변을 드렸는데... 흡족하실지 모르겠군요.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인샬라...
Written by mulder (2008. 6)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www.occul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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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파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멀더의 명상 한자락3 |
2008/03/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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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파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모든 두려움은 "육신이 나"라는 에고의 소산
요새 행성X라고 불리우는 니비루(NIBIRU)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으며 그것이 지구를 스쳐가거나 부딪쳐서 대 참사가 일어 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또한 그와 더불어 2012년 지구 대 파멸설이 한창 유행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신흥 종교 단체나 영성 단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목청을 돋우며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린다. 종말론이나 휴거는 이들 단체들에게 있어서 시장 상인들의 추석 대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포심을 조장하여 한 몫 챙길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태양계 또는 태양계 외곽에 머물고 있는 은하행성 연합군들이 지구를 대청소하기 위해 만든 인공 로켓포 같은 것이라고 한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한편의 코미디며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무자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단체들은 보다 실용성을 강조한다. 몸을 금강체로 만들어서 대 파국을 견딜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대로 된 영성단체라면 이렇게 유치한 발상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육신을 지키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모든 의도는 에고(ego)의 소산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에고의 놀음에 놀아난다면 다른 것은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다면 행성 X는 정말 오는 것일까? 아직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떤 과학자 그룹은 행성X가 곧 도래한다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내놓은 상태이며, 다른 그룹은 태양계에 있는 수 많은 떠 돌이 행성들 중 하나며 결국은 지구로 오기 전에 목성의 엄청난 인력으로 인해 잡아 먹힌다고도 얘기한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낼 필요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신에 의해 예정된 섭리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 영적 성숙을 이뤄 가라는 고마운 선물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영적 성숙을 이루려면 모든 상황에 대해 깨어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수다.
지금처럼 정치판 뉴스나 보면서 주식 하락에 가슴 졸이고 밀가루 사재기나 하고 있으면 카르마는 다음생으로 계속 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건 어떤 고통이 오건 거기에 감정을 뺏기지 말고 그저 바라 봐야만 한다.
왜 필자가 "감정을 섞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냐면 "육신이 나"라는 생각으로 인해 감정이 끼어 들게 되어 모든 고통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감정의 모든 체계는 "육신이 나"라는 에고(ego)의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에고가 벗겨지지 않는 한 신성(神性)이 자리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 감정을 섞지 말라는 것은 '감정을 죽이라'거나 '매정하게 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엄습하는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은 죽일 수도 없으며 죽여 지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피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떤 감정이 피어 오르는지 단지 지켜 보라는 소리다. 물론 감정을 섞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공부를 해야함은 필수다.
선불교의 "이모꼬"를 하건, 마하리쉬 선생의 "나는 누구인가"를 하건 또는 오쇼 라즈니쉬의 "주시"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순수한 앎의 지켜보는 상태'를 유지하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써서 꾸준히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밖에 없다.
맥빠지는 소리 같지만 설령 당신이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는 없다.
희망을 갖지 마시라. 희망이란 현재의 처지를 불만족스러워 하는 당신의 에고가 미래에 투사한 그림자요 도피처에 불과하다. 당신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고통은 끊임없이 당신을 습격할 것이다. 모든 것을 우주의 창조주 진아(참나)에게 맡기고, 앞날의 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티끌같은 희망조차 버리게 된다면...그때야 말로 당신에게 신의 가호와 축복이 내리는 순간이다.
마하리쉬 선생은 "고통 조차 진아의 일부이니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 우주는 진아의 소산이며, 진아는 무소불위의 완벽한 존재이기에 '고통' 역시 우리가 꺼려해야할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인 것이다. 나중에 인생을 모두 살고 뒤돌아 봤을때 그 고통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너무나도 정확한 시기에 나에게 왔음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창조주 진아는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는다. 항상 최선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기시라.
이런 얘기를 하면 종종 어떤 분들은 "모든 것이 진아이니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네. 아이고 허무해"라고 얘기들을 하시는데, 그것을 일러 불교에서는 "공(空)에 빠졌다"고 한다.
우주 모든 만물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해서 세상은 진실로 공한 것이지만 묘하게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묘하게 존재하는 3차원적인 매트릭스를 깨어 있는 의식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공에 빠져 매트릭스 시스템에서 허우적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 묘하게 존재하는 홀로그램적 매트릭스 시스템은 우리의 영성을 활성화시켜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창조주와 하나됨을 위한 교육의 장이요 놀이터임을 확철대오하게 알아야만 한다.
이런 시스템은 창조주가 인간에게만 내려준 하나의 은총이요 특혜이다. 천사나 천신, 요정이나 그 어떤 영적인 존재들도 이런 은총을 받는 존재는 없다. 오직 우리 인간들만이 3차원적인 학습터에서 신나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고통을 느낄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영적 성숙은 요원한 일이다. 일개 인간이었던 석가모니가 깨달으셨을 때 온 우주의 천신들이 모여 발 아래 경배를 드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었다. 성경에서도 천사들은 인간을 부러워 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간보다 영성이 높게 창조되었지만 육체가 없기에 영적 성숙에 한계가 있으며 진화 속도 역시 인간보다 매우 느린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인간 몸 받고 태어나기가 너무나 힘드니 이 기회를 살려 깨달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고통은 나를 괴롭히려는 하늘의 저주가 아니라 나의 공부를 돕는 경이로운 선물이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 오건 어떤 상황이 나를 덮치건...설령 내일 아침에 행성X가 지구를 파괴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그저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라. 그러면 그것이 실체가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묘하게 존재하는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두려움은 "육신이 나"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
창조주 진아의 오묘한 섭리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이것 뿐이다. 당신은 육신이 아님을...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진아가 바로 우리의 진정한 실체임을 느끼시라.
멀더의 명상 한자락 ( www.occultist.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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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와 인과응보 그리고 윤회
멀더의 명상 한자락3 |
2008/03/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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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와 인과응보 그리고 윤회
너무나 거창한 주제들이라 얘기를 어디서 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많은 수의 수행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에 오래 몸 담았던 성직자들도 명철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지인으로 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멀더님! 한가지 물어 봅시다. 최근 어떤 B명상단체에서 소위 깨달았다고 자칭하는 지도자가 신도들을 성폭행하고 거액의 금액을 갈취했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그 지도자와 열성 신도들은 그것을 인정도 안할 뿐 더러 깨달은 자에게는 세속의 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하더이다. 대체 어찌된겁니까? 도판이 정말 이렇게 드러운 곳입니까?"
평소에 존경해 오던 지인께서 그 B명상 단체의 지도층 인사와 대면을 한 후 이같은 사실을 알고서는 분기탱천하여 전화를 하신지라 일단 즉답을 피하고 화를 누그러뜨리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 마하리쉬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살인을 하거나 강간을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면 어떠한 카르마도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마하리쉬 그 양반이 그런 말을 했습니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고 지금까지 모든 정신체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자들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방편을 사용합니다.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하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의 언어란 것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방편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여 더 큰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수행하는 사람들은 너와 내가 없음을 추구해야 하니 남의 여자를 건드려도 되고, 시비분별을 하면 안되니 신도들의 재산을 가져간들 무엇이 문제되겠느냐"는 망발들입니다.
그러면서 마하리쉬 선생 같은 성자들의 전체적인 말씀 중에서 앞꼭지 뒤꼭지 모두 따 버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혹세무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하리쉬 선생의 저 말씀은 100% 맞는 말입니다. "육체나 마음이 내가 아니다"는 것을 확철대오하게 깨달은 자는 그 무슨 행위를 하든 카르마가 적용되지 못하고 물러간다는 뜻입니다. 적용될 육신이나 마음이 이미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 말씀은 제자들에게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서 가슴에 깊이 못박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저 말씀은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자의 진면목은 "사랑"과 "자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원론이 없어지고 모두가 '진아(眞我; 참나)'라는 것을 깨쳤기에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사랑스럽고 자비심이 넘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업보를 받지 않지만, 반대로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깨달은 자에게는 애초부터 강간이나 금품갈취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떤 단체에 몸을 담건 어떤 스승을 만나건 이것 하나만 명확히 가슴에 담고 있으면 됩니다. 깨달음은 "사랑"과 "자비"... 이것 외에 어떤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그 단체나 스승이 저런 성인들의 말씀을 빌미삼아 모순된 행동을 하는지 이것만 적용시키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슴 아프면 남도 가슴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논어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인들의 말씀은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명확합니다. 그리고 위대합니다. 어려운 것은 요설일뿐입니다. 내가 제대로 깨치지 못했기에 말이 어렵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쉬운 것만이 진리"라는 오쇼 선생의 말씀은 언제든 새겨 들어야 할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시비분별을 떨구어 버리고 이원법을 넘어서 카르마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인과응보의 무시무시한 상벌 체계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풀어 나가기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원인"과 "결과"라는 두 단어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는 아주 극히 자연스러운 명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진실일까요?
답은 No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이 없다"는 것은 현존 인류 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분 중의 한분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운동역학 테스트로 진단해 봐도 진실도가 999로 측정이 됩니다. (1000이 만점)
그렇다면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연기법(緣起法)은 무엇인가요? 어떤 현상이 어떤 것에 연하여 일어 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난다고 받아 들이며 "죄의식" 컴플렉스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과응보적 죄의식은 기독교의 원죄의식 못지 않게 지금껏 인류에게 큰 오류와 오해를 불러 왔습니다. 순기능도 있었지만 공포심에 휩싸이게 하는 역기능이 너무나 컸던 것이죠.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전생에 착한 일을 하면 다음생에 고관대작집에 태어나고, 못된 짓을 하면 빈민촌에 태어나 죽도록 고생한다는 것이 모두 뻥이란 말인가?
그래서 석가모니께서 깨달은 후에 "이 법은 참으로 깊고 오묘하여 미혹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 모든 일은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해 하시면 됩니다.
꽃이 피어납니다. 그 꽃은 왜 피어나는 것일까요? 햇빛이 원인이 되어 피어 나는 것일까요? 촉촉한 이슬비가 원인이었던 것일까요? 영양가 많은 땅이 원인이 되어서 피어나는 것일까요?
햇빛, 이슬비, 토양...이 모든 것이 꽃을 피어나게 하는 조건일 뿐 원인이 아닙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이미 씨앗 속에 내재된 신의 힘입니다. 원인은 강제적인 성격을 띄지만 조건은 자연스러움을 전제로 합니다. 이 우주에 깃든 신성에는 절대로 '강제'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과응보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강제적 상벌체계가 아니라 조건에 의한 밸런스(조화)의 시스템입니다. 마하리쉬 선생은 이것을 일컬어 무인론(無因論)이라고 하시면서 현상계의 모든 인과를 철저히 부정하고 계신데, 용어들이 힌두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것이라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모두 설명을 하기가 그렇지만 간단하게 압축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분리되어 있는 객체들이 있어야만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만 있는 착각일뿐 실상은 오직 진아만이 유일하기 때문에 각각 떨어진 객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너무 어려우시다면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20세기의 노스트라 다무스로 알려진 위대한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를 대부분 아실겁니다. 이 양반은 최면 상태 속에서 "아카식 레코드"라는 천상의 지식 창고에 들어가 이 우주의 모든 비밀을 퍼다 날으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이 하루는 마녀 사냥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접속을 하셨는데 거기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녀사냥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쓴 영화 칼럼 <마녀를 위한 변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마녀사냥에 참여하여 죄없는 노파나 과부들을 잡아다가 눈알을 빼고 사지를 찢고 불태워 죽인 흉악한 사람들이 후생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봤더니 놀랍게도 "변호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변호사라? 유식함과 부의 상징인 직업이죠.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직업입니다. 그런데 전생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왜 변호사 같은 좋은 직업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여기서 바로 아까 말씀 드린 밸런스의 문제가 나옵니다. 인과응보의 죄의식으로 따지자면 말이 안되는 문제지만 조화를 통한 밸런스의 문제로 따지면 쉽게 이해가 가는 문제인 것이죠.
그들은 그냥 변호사가 아니라 "인권" 변호사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생에 다른 이들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았으니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인권 변호사로 재 탄생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조화로운 신의 섭리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유명한 사람들의 전생 이야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데이비드 뱅슨 박사라는 예언가가 있습니다. 이 양반이 며느리를 맞았는데 한국 여자분을 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겠죠. 명상을 통해 한국에 관한 역사를 훑어 가기 시작했더니 놀라운 비밀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배워 왔을겁니다.
"한국인들은 너무나 심성이 착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침략을 받은 국가이다."
과연 이런 얘기로 그 수많은 침략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짓고 태어났길래 한국땅에 태어나서 그 모진 환란을 겪었던 것일까요?
뱅슨 박사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렇습니다.
한국은 영혼들이 가장 태어나고 싶은 곳이라고 합니다. 한번 태어남으로해서 몇생을 건너 뛸 수 있는 엄청난 공부의 장이요 신령한 땅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토는 한정되어 있고 인구도 많지 않기 때문에 경쟁이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한다고 해서 모두 태어날 수 없었다는 얘기죠. 그럼 한국땅에 태어나지 못한 영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꿩 대신 닭이라고 중국, 일본, 몽골 등 그 주변국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에 환생할 기회를 기다리지 못한 영혼들은 직접 말을 타거나 배를 타고 건너왔던 것이고 그것이 각종 전쟁과 난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한국땅을 침범해 온 그들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연민이 솟아나지 않나요? 얼마나 오고 싶었으면 그런 방식을 써서라도 왔을까요. 지금 나도 과거에는 손에 창칼을 들고 한국땅을 넘어 온 왜병이나 몽고군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시비를 분별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조차 들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진실한 윤회의 체계요 연기법입니다. 윤회는 우리를 죄의식에 짓눌리게 하는 형벌 시스템이 아니라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 시키는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사랑을 배우고 자비를 배워서 진아 속에 머물고 내가 사랑 그 자체인 진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주제들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의식의 확장을 하게 됩니다. 쉽게 말씀드린다고 했으나 제가 일별한 범위내에서 설명을 드렸으니 모든 분들이 그렇게 느끼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참고는 하되...공부는 각자의 몫입니다. 여러분 공부에 겨자씨 만한 도움이 되었다면 그저 신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멀더의 명상 한자락 (http://www.occultist.co.kr) *이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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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들의 탄생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8/0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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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아이들의 탄생 인디고/ 크리스탈 차일드
몇일 전 스위스에서 존경하는 누님 한분이 오셨다. 캬바레에서 만난건 아니고 어떻게 어떻게 인연이 되서 알게 된 분인데... 이 분의 큰 따님이 책을 냈다고 하길래... 무슨 책이냐고 여쭤봤더니.. 헉..9살부터 쓰기 시작해서 11살때 14권 신화 이야기 전집을 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복사집에서 복사한 책이 아니라 정식으로 완판 도서를 낸 것이다.. 난다 긴다하는 작가들도 1권쓰기가 힘든 마당에...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14권 짜리 전집을 내다니... 그분 말씀으로는 어렸을때부터 그런 재능을 타고난... 자기 자식이지만 지구인과는 종자가 다른 아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신다..
필자가 존경하는 분들의 아드님은 현재 중학생 소년인데... 투시 능력과 천리안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보면 내장 장기가 훤히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었거나 아프면... 의식으로 빛을 보내서 직접 치료까지 가능하다... x맨이 따로 없다... 중학생 소년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총수 댁을 방문해 매주 자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현재 생생히 벌어 지고 있는 일들이다..
필자의 조카 역시 그런 아이들 중의 한명인데... 어렸을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더니... 요새는 아무렇게나 그리는 그림마다 기(氣)를 방사하고 있다.. 기공사분들과 영능력자들에게 확인을 했더니.. 웬만한 승려들이 그린 달마도 뺨칠 정도의 기가 나온다고 한다..
(내 조카긴 하지만 어떨때는 노인과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생긴것도 엄청 영적이다. 나는 저때 뭐하고 있었을까 -_-;;;)
외국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인디고(Indigo) 차일드, 크리스탈(Crystal) 차일드라고 부른다.. 외계에서 직접 환생한 영혼들이 대부분이며 태어날때부터 아예 초능력을 간직한 채 태어난다.
이와는 조금 달리 스타시드(star seed)라고 하는 부류들이 있다.. 외계에서 직접 환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지구에 적응한 후 탄생하는 사람들인데... 인디고와 크리스탈 인류를 보호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인디고 아이들 Indigo Children>이라는 책의 저자인 리 캐롤과 잰 토버는 이러한 초인류 아이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창의성이 높고 의지가 강하며, 제3의 눈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 초인류들은 자신들이 지닌 탁월한 인식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해갈 영적 천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속 토굴에서 30년동안 쌔빠지게 수행을 해야 겨우 될까 말까였는데...요새는 아예 깨달은채로 태어나는 것이다. 일부 종교인들과 기득권 계층에게는 위화감의 원인이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이 종종 미친 사람 취급 받으며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급 물살을 탔다.. 석가께서도 후천시대에는 여기저기 깨달은 자가 홍수를 이룰 것이라 했다.. 이제는 하루빨리 이런 시대에 대비하여 초인류를 위한 교육 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초인류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반 사람들도... 내 안에 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얼른 알아 차리고 하루 하루를 신의 의지대로 살아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1세기는 영적인 시대이며.. 우리는 이미 그 안에 발을 푸욱 담그고 있다.. 빠져 나올 수는 없다... 신에게로 곧장 가느냐...돌아서 고생 고생하며 가느냐...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Written By Mulder (2010.7.16)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http://www.occultist.co.kr ) 네이버 명상 동호회 멀더의 오컬트 아쉬람 ( http://cafe.naver.com/occultmul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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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왜 병에 걸려 돌아가셨을까?
멀더의 명상 한자락2 |
2007/06/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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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왜 병에 걸려 돌아가셨을까? 깨달은 자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
예수, 석가, 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 이 위대한 성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온갖 고초와 질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사나이 중 사나이...슈퍼스타 예수..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얼마나 큰 고통을 안은채 십자가로 직행하셨는지 멜 깁슨 형님이 영화(패션오브 크라이스트)로 여실히 보여주셨다.
생각만해도 미소짓게 만드는 영성계의 큰 형님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 말년에 음식을 잘 못 드셔서 식중독으로 고생 고생 하시다가 입적하셨고,,,
인류 역사상 예수, 석가 이후에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위대한 진아(眞我) 라마나 마하리쉬 선생...(좌측 사진) 향년 71세로 팔뚝에 퍼진 피부암으로 결국 열반에 드셨으며...
20세기 영성계에서 가장 찬란한 지성파 각성자로 추앙받는 크리슈나무르티... 이 양반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현상으로 비춰질게 뻔하다...
완전히 깨달아 신의 영역으로 들어간 현자들이... 왜 '하챦은 고난과 질병'으로 픽픽 쓰러지냔 말이다..
예수와 석가의 신적인 능력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잘 들 아실 것이고... 그저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업장을 녹여 환생을 안하게 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셨던 마하리쉬 선생 그리고 천명이 넘는 청중을 일시에 삼매(三昧; 진아체험)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엄청난 파워의 크리슈나무르티 선생...
대체 이런 무소불위의 초능력을 가지신 양반들이 외부로부터의 고통을 왜 당하며, 암같은 질병에 걸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종종 신을 부정하고 영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좋은 타겟이 되어 안주감이 되곤한다. "이것봐라. 아무리 깨달으면 뭐하냐? 자기 몸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양반들의 공통점은 고통을 당하면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사랑을 퍼주면서 돌아가셨다는 것에 있다..
사람이 각성을 하고 깨닫게 되면 엄청난 진동수를 가지게 되며 주변의 부정한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막 빨아 들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신경계의 교란(석가)은 물론이고 각종 난치병 증상들(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이 발생하며 힘든 주변상황(예수)이 만들어 진다... 한두명도 아니고 수천 수만의 부정적 에너지가 계속 유입되면 육체적 처리 속도의 한계로 인해 부하가 걸리게 되는 이치이다.. 마하리쉬 선생 같은 경우엔 돌아가시는 직전까지 자신을 친견하러 오는 사람들을 전혀 막지 않으셨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는 친견자들이 너무 많아서 한 사람당 친견 시간이 단 몇초밖에 안될때도 있었다고 하니.. 돌이켜 보면 그분의 사랑이 정말 눈물겹지 않을 수 없다.
도를 닦는 도사들이나 승려들이 속세에서 벗어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힘들게 닦아 놓은 자신의 고급 에너지를 사람들이 빨아가고 대신 그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하는게 싫어서 산으로 숨는 것이다.
예수, 석가, 마하리쉬,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성자들이 일반 '도꾼'들과 틀린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양반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부정적 에너지를 계속 흡수해 가면서 세상을 정화시킨 사랑의 화신들이다.
소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다시 환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한몸 잘 보전하면서 겁나게 수행하여 깨달았다고 느꼈는데... 뭔가가 또 있거든... 하지만 그것이 뭔지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업장으로 인하여 그것을 알기 위해 또 태어나는 것이다.
깨달음은 에고를 벗어나 진아가 되는 것이지만... 궁극의 깨달음은 진아가 우주적 사랑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기에... 위에서 언급한 네분의 선생들은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가셨던 것이다..
마하리쉬 선생의 수제자로서 역시 진아를 깨달으신 스와미 선생이 그의 평전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람들은 육체가 튼튼해야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육체가 튼실하지 못하면 진아를 깨달은 후 여러가지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일시에 빈약한 육체로 흡수되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하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영성인들이여...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왔다.. 산으로 숨든가 세상에 나와 사랑을 실천하든가... 하지만 그 선택은 결과에 구애받지 않은 무판단적 선택이어야 한다.. 판단이 들어가면 벌써 에고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카르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것을 선택할지는 이미 당신의 진아가 다 알고 있다.. 그대는 단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될뿐...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 순간 알아차리며 현재를 즐기면 되나니...
[참고문헌] 스와미 평전 <무심, 나는 진아다>, 탐구사, 2000 마하리쉬 평전 <나는 누구인가>, 청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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