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현상을 보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상과 만나게 된다. 지하철을 탈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역전앞을 지나갈 때… 수많은 노숙자와 시각장애자, 그리고 장애를 가지신 분들의 구걸…
(드라마 속 손현주 님의 모습인데 너무 리얼해서리.. ^^;)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 보자.. 여러분들은 그런 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이곳은 청문회장도 아니고 재판장은 더더욱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라는게 아니라 그냥 여러분들의 솔직한 심정을 스스로에게 속삭여 보라는 얘기다.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얼굴을 찌푸리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연민을 가득 담은 시선을 보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저렇게 살아서 뭐하냐.. 나같으면 그냥 자살이다.. 등등 생각하시는 바가 다 틀리실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의 공통점은 바로 불편함이다…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불편함… 바라본다 해도 뭐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막연함…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그 양반들을 바라보는 현상의 진실이다..
하지만 과연 여기까지일까?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 땡일까? 평생 그런 양반들을 보지 않는 조건이라면 모를까…여러분이 죽을때까지 그런 현상을 지켜봐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비단 길거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TV의 의학 프로그램에서는 매주 희귀병, 불치병 어린이들이 고통의 단말마를 내지르며 괴로워 하고 있고, 하다못해 아침 출근길에 거리에 방치된 쥐, 강아지, 비둘기 등의 동물 시체만 봐도 혀를 쯧쯧 차며 불편해 한다.
돈 몇푼 쥐어주고, 기부금 얼마 내고, 골목 한 귀퉁이로 동물의 사체를 밀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근원적인 불편함은 어쩔것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이 모든 현상들이 다양한 사건들이라 생각하지만…결국은 하나로 귀착된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내가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사람이 저꼴로 살면 안되는데.. 하는 내면의 두려움…바로 그것이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다시 되물어 온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맹자의 측은지심은 엿바꿔먹고 긍휼하게 여기라는 예수의 말은 니미 좆이란 말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그분들의 말씀은 모두 옳은 말씀이시다.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잘 못 받아 들여진 것이 문제일뿐이다.
측은지심을 갖되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며, 긍휼하게 여기되 저항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기존의 종교와 윤리는 이러한 두려움과 저항에 대한 문제는 쏙 빼놓은채 앞에 있는 도덕 교과서적 명제만 파고들었으니 여러분들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확실하게 얘기하건데, 여러분들이 걸인이나 장애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려움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그 두려움은 여러분을 덮치게 되어 있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저항하면 반드시 나를 엄습하는 것이 이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드릴 테니 그대로만 행하시면 된다..
걸인이나 장애우, 희귀병, 불치병, 그 밖에 우리가 불편해하는 시선을 보내는 모든 분들은 우리들보다 엄청나게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용감한 분들이다. 이미 이 지구에 육신을 받아 내려오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해 결정을 끝내고 내려온 위대한 전사들이다. 오히려 그 양반들이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야지 감히 우리들이 그 양반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일뿐이다.
불편한 시선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남다른 체험이다. 바로 그 남다른 체험이,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한, 또는 몇생에 걸쳐서 거듭 경험해야 얻을 수 있는 영혼의 성숙을 순식간에 이뤄낼 수 있는 영적 성숙의 엘리베이터인 것이다.
우리는 그 양반들을 찬양해야 한다. 돈을 건네지 않아도. 기부금을 내지 않아도 가슴 속으로 “용감한 영혼이여. 승승장구하소서. 이 생에서 체험할 건 모두 하고 가소서.”라고 기원만 하면 된다. 그것이 마지못해 불편해 하며 돈 몇푼 쥐어주는 것보다 훨씬 고결하고 숭고하고 여러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금전을 건네더라도 지금처럼 쭈뼛쭈뼛 거리며 내지 않아도 된다. 용감한 영혼을 위한 후원금이라 생각하라. “내가 가진게 없어서 딴건 당신과 같이 하지 못하고 후원금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라. 그러면 당신 가슴 속에 있던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불편함도 사라질 것이다.
기존의 종교와 사회 시스템은 바로 이러한 점을 대중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거늘…여지껏 대중들을 어린애 취급하며 공포심만 잔뜩 앵겨주고 있었으니 한탄스러울 일이다.
종교인이건 일반인이건 이제는 <불편한 현상을 보는 우리의 자세>에 변화를 주어야 할 시기가 됐다. 두려움을 갖지 마시라. 불편해 할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나니…당신은 이미 하느님이요 완전무결한 신이다. 깨달음을 구하려 하지 말라. 이미 완전한데 뭘 더 깨닫는다는 소린가? 뭔가 깨달아야 한다는 그 관념 자체가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류 전체가 속박당한 구속임을 가슴으로 이해하시라. 그리하면 더 이상 당신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없을 것이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시는가? 원래 진리는 간단한 법이다. 여러분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에...
멀더의 명상 한자락 (www.occul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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