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에 대한 영화 <The Cup>
저번 주말에 CUP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첫 부분부터 기분이 묘하다. 티벳의 어린 승려가 부르는 노래로 시작되는데, 문화적 이질감 때문인지 처음엔 상당히 듣기에 거북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난 다음에 엔딩 화면을 보면서 듣는 어린 승려의 노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주 친근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티베트 불교의 개혁자인 키엔츠 완포의 7대 환생으로 알려진 '키엔츠 노부'가 메가폰을 잡아 티베트 스님들이 배우로 출연하고, 티베트어로 만들어진 최초의 티베트 영화다. 특히 실재로 월드컵에 열광한 티베트 스님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의 감독인 '키엔츠 노부'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리틀 부다> 제작시 옆에서 일을 도우며 견습한 것외에는 영화 경력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뛰어난 영상미와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98 프랑스 월드컵을 보고 싶은 어린 승려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 간간히 보여지는 스님들 사이의 세대차이....스토리는 이게 전부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우선 중국과 티베트의 갈등관계가 드러나 있고, 젊은 스님과 노승들의 세대차이가 나타나 있다. 거기에 인도에서 사는 티베트 승려의 셋방살이 서러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전혀 존경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물론 고승들은 그런 처지조차도 수행의 좋은 발판으로 생각하시겠지만)
그런데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러한 겉으로 보이는 갈등구조의 표출 때문이 아니다. 바로 영화 중간 중간에 관객들에게 툭툭 던지듯이 묘사되는 선문답식 표현이 무척 은은하면서도 세련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장면이다. 어린 스님들이 TV를 보다가 잠깐 정전이 됐을 때, 손을 이용한 그림자 놀이를 하면서 주고 받은 대사인데, 그러한 선문답식 표현이 아주 잘 녹아 있는 명장면이다.
옛날 옛적에 한 남자가 가위에 눌렸습니다. 무서운 괴물이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죠 오늘 밤 널 잡아 먹겠다 그는 겁에 질렸습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괴물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절 어떻게 할 거죠? 괴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는냐? 이 꿈은 네 꿈인데....
그렇다... 내가 꾸는 이 꿈은 바로 내 꿈인데...내 마음의 소산인데....내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인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화엄 사상을 아주 쉽고 극명하게 설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거지 점쟁이가 지붕에서 동자승들이 설치한 안테나를 쳐다보며 혼자 히죽 웃고 있다. TV가 설치된 방에서 잠깐 나온 주인공 동자승이 그 모양을 보고는 이렇게 외쳤다.
"위에서 뭐해요? 거기선 경기가 안 보여요"
그러자 그 점쟁이가 이렇게 말했다.
"넌 밑에서 뭐하냐? 거기선 보여?"
선문답도 이런 선문답이 없다. 원래 선문답의 뜻은 입으로 말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영화를 보시면서 가슴으로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에서는 동자승만 귀여운게 아니다. 그분들께는 불경스러운 말이지만 노스님과 절을 관리하는 '게코' 스님도 귀엽기 한이 없다.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이 대사를 보시라.
노스님: 월드컵이 뭔가
게코 스님: 공 하나를 놓고 두 나라가 싸우는 것입니다
노스님: 전쟁은 언제 벌어지나?
게코 스님: 오늘 밤 자정입니다
노스님: 묘한 시간에 시작하는군. 싸워서 이기면 얻는 것은 뭔가?
게코 스님: 컵입니다
노스님: 부녀자를 강간하는 일도 일어나나?
게코 스님: 그런건 없는 듯 합니다.
지금의 현대인들이 보면 너무나 웃겨서 포복 절도할 대사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장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더 더욱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장면이다.
(영화의 감독인 키엔츠 노부)
영화의 끝 부분에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어린 동자승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펼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또 장난이 아니다.
주지스님: 걸을 때 부드러움을 느끼려면 온 세상에 가죽을 덮어야 할까?
동자승1: 아닙니다.
주지스님: 그럼 뭐가 좋겠느냐?
동자승2: 가죽 신발을 신으면 됩니다.
주지스님: 그래 가죽 신발을 신으면 될 것이니라. 그럼 어디를 가나 부드럽겠지. 나 한 사람의 발에 가죽 신발을 신는 것이 온 세상을 가죽으로 덮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느니라. 만사가 이것과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는 원수와 적과 마귀와 온갖 악한 것들이 어느 곳이나 할 것없이 도처에 널려 있지만, 자신에게 유해한 그것들을 일일이 모두 물리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의 마음을 평정시킬 수만 있다면, 내 마음의 복수심과 적대감, 유혹과 사악한 생각을 다스릴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친 것과 같다. 누구나 모든 것에 만족할 수만은 없고 무슨일이든 괴로움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새롭게 생각하라. 시련과 사악한 것에 대응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와 그 실체 없는 것들을 그냥 바라보거라.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라.
이 영화는 두 가지 면에서 참으로 신기한 영화다. 첫 번 째로 신기한 점은 영화 속에서 작위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가르침이 전달된다는 것이요, 둘째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내 자신이 동자승이 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점이다.
마음이 허해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는 분, 주말에 쇼프로가 괜히 짜증나서 애꿎은 리모컨만 눌러 대시는 분....이런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당부하는 바이다. 애인 없이 혼자 영화를 봐도 뿌듯한 영화되겠다.
Written By Mulder (2006.11.30) 멀더의 오컬트 연구소 ( http://www.occultist.co.kr ) 네이버 명상 동호회 멀더의 오컬트 아쉬람 ( http://cafe.naver.com/occultmul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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