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속의 드라큘라(1982, 이형표) 왜 여자는 드라큘라에게 끌리는 걸까?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승려는 역사적으로 해결사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손에 사시미칼 들고 설치는 <시실리2km>의 임창정 부하 ‘땡중’을 연상하진 마시라. 어디까지나 그 대상은 귀신에게 시달림을 받는 민중들이었으니까. 즉, 승려나 절은 귀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일종의 해결사 같은 느낌으로 인식되어져 왔다는 소리다.
한국 고전-전설을 극화한 라디오극 <전설따라 삼천리>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도 원귀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은 무속인 보다 승려의 비중이 훨씬 많았으며, 이것은 우리 민간 신앙에 있어서 백성들이 최후로 기댈 수 있는 <소도>요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추측컨데 특정 ‘나와바리’만 관리하는 조상신이나 산신 같은 지역구 신령 보다는 세상 모든 미물들에게까지 자비로운 미소를 뿜어내는 전국구 부처님이 민중들에게는 더 든든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
어찌됐건 유구한 세월동안 이 땅의 정신적인 치안을 담당하던 해결사 스님들도 이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신 듯 하다. 스님들의 퇴마 대상도 국제화 물결을 탔다고나 할까. 처녀귀신이나 구미호 등만 상대하다가 이제는 서양의 대표적인 귀신 드라큘라까지 상대하게 됐으니 말이다. 1982년도에 제작된 공포 영화 '관속의 드라큘라(감독 이형표)'가 바로 그런 영화다. 하얀 소복이나 머리를 풀어 헤친 고전적인 귀신들만 상대하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서양에서 건너온 드라큘라마져 제압하는 승려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이전 작품에서 맛보지 못했던 문화적 충돌의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이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 작품에서 승려의 퇴마 장면이 짧다고는 하지만, 천주교의 신부가 들고 있던 십자가를 날려 버리고 드라큘라가 접근하는 순간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염주로 드라큘라의 목을 누르는 장면은 가히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정도로 관객들에게 대단한 임팩트를 던지고 있다.
영화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여자 주인공 성혜가 갑작스럽게 학업을 중단하고 무엇인가에 쫓기듯 귀국을 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에게는 장충한이라는 의사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와의 결혼도 파기한 채 집안에 틀어 박혀 기이한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장충한은 자신의 친구이자 천주교의 신부인 박신부를 병원으로 불러들여 그녀를 관찰하게 했는데, 박신부는 직감적으로 악령에게 씌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에게 씌인 악령은 다름 아닌 드라큘라 백작이었던 것이다.
드라큘라는 몇백년 동안 먹어온 양식(洋食)이 질렸는지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의 신선한 피로 만든 선짓국을 맛보기 위해 입국, 차례 차례로 희생자를 늘여 가며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고 박신부와 장충한은 드라큘라를 처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미 성혜와 그의 미국 여자 친구마져 피를 빨려 흡혈귀로 변하게 되고, 최후의 순간 두 사람은 드라큘라들에게 둘러 싸여 죽음 일보 직전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때 어디선가 승려 한 분이 나타나 드라큘라를 공격하여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들고, 박신부와 장충한은 관속에 누워 있는 성혜의 가슴에 처참한 기분으로 나무 말뚝을 박아 버린다.
(드라큘라와 대적하는 승려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여담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한마디 하자면, 이 영화에서 드라큘라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정식 배우가 아니라 주한미군부대에서 2주간 휴가를 얻은 이름 모를 미군이었으며, 제작사는 이 사람을 드라큘라 전문 배우로 이름을 떨친 미국의 명배우 '크리스토퍼 리'라고 사기극을 펼쳐 세인들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 도착한 직후 피를 구할 수 없어, 혈액은행에서 빼 돌린 수혈 주머니를 관 위에 앉아 쪽쪽 빨아 먹는 코믹한 장면을 '크리스토퍼 리'가 연기했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을터이니, 이 정도면 사기극도 애교로 봐줘야 할 듯.
어떤 이들은 "영화 속에서 드라큘라들이 주로 사람을 꼬시는 장소가 그 당시 젊은이들의 해방구였던 디스코장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분별한 서구적 가치관의 유입에 대한 감독의 위기 의식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뭐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중간 중간 깜짝 놀라는 장면도 있지만,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아무 생각없이 깔깔거리며 볼 수 있는 독특한 한국 고전 공포물 되겠다.
[작품 정보] 감독: 이형표 출연: 켄 크리스토프, 강용석, 박지훈, 박양례, 킴버리 후드 제작: 1982년
[영화 속 오컬트 분석]
이 영화 <관속의 드라큘라>에서도 그렇고 다른 흡혈귀 영화를 봐도 그렇고, 여자들은 언제나 드라큘라를 거부하지 못하고 피를 빨리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영화 <드라큘라>와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을 보면 피를 빨린 여인들이 드라큘라 백작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는데, 심지어 영화 <반헬싱>에서는 드라큘라의 신부라 불리워지는 여자 흡혈귀들이 백작과 교접을 하여 흡혈귀 아기들을 대량 생산(?)해내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드라큘라 백작이 남자로서 그렇게 잘해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정실부인이 아니라 후처 노릇을 하는데도 비위를 맞춰가며 여자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적 상징으로 볼 때 드라큘라는 불로장생의 환상이며 무한의 권력을 소유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잠재의식의 표현이다. 게다가 기묘하고도 음침한 행위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두뇌를 가졌고 거기에 따르는 체력 역시 출중하다.
한마디로 드라큘라는 그런 능력을 바탕으로 여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성적 매력이 충만한 슈퍼맨적인 우상이며, 많은 남자들 역시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원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즉, 여자에게 있어 드라큘라는 남성적 매력의 최고 정점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드라큘라를 찾아내려면 젊은 처녀를 흰색의 어린 암말 등에 태워 무덤을 가로지르게 한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는데, 이것 또한 드라큘라같이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에게 처녀성을 받치고픈 여자들의 성적 판타지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우리의 도깨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연세 드신 어른들은 흡혈귀를 '드라큘라'라고 하지 않고 '서양 도깨비'라고 칭한다. 단어가 어렵고 입에 잘 붙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른들의 이런 표현은 일견 그럴듯한 면을 가지고 있다. 둘 사이에 유사성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어른들 말씀이나 설화를 보면 대개 도깨비는 부지깽이, 몽당비, 빨래 방망이, 절굿대 등에 피가 묻어서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물건들의 공통점은 일단 여자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 길고 굵직해서 남자의 생식기와 매우 유사하게 생겨 먹었다. 또한 도깨비들이 들고 다니는 우툴두툴한 방망이는 그 자체의 이미지만 봐도 영락없는 '대물(大物) 남근(男根)'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변해서 힘도 쎄고 금은보화도 척척 가져다 주는 도깨비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여자들의 이상형, 바로 백마탄 왕자의 변형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대개의 남자들이 어디 도깨비의 발가락이라도 따라오는 재주를 지녔는가? 몽당비를 쓸며 내뱉는 아내의 푸념,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부지깽이를 놀리는 아내의 넋두리, 허리가 휘도록 절구질을 하며 한숨 짓는 남편의 무능, 바로 이러한 우리네 여인들의 한과 눈물의 결합체가 도깨비로 태어났던 것이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무능한 남편이 돈도 잘 벌어다 주고 밤일도 잘 해주는 남자로 변신하길 바랬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상인데, 슈퍼맨 콤플렉스가 바로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남자들이 점점 위축되고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이 온다면, 드라큘라와 도깨비만 더 신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관속의 드라큘라>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성혜도, 사실은 약혼자의 성적인 무능력이나 지나친 도덕적 결벽 같은 것에 싫증을 느껴 일부러 드라큘라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드라큘라 전설은, “남자인 너희들이 여자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무능하게 군다면 언제든 드라큘라 같은 존재를 찾아 떠날 것이다”라는 여인들의 무서운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입증된 역사가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흡혈귀의 역사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장자크 루소(Rousseau, Jean-Jacques, 1712~1778)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니 그도 어지간히 여자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나 보다.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i33man@naver.com]
*이 글은 스포츠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모든 저작권은 www.occultist.co.kr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흡혈귀-잠들지 않는 전설, 장 마리니, 시공사, 1996 전율의 괴기인간, 다니엘 피아슨, 우주문명사, 1983 서정범『학원별곡』 범조사, 1986 퇴마록 해설집, 이우혁, 들녘, 1995 신비동물원, 이인식, 김영사, 2001 이성은 신화다(계몽의 변증법), 권용선, 그린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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